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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공자정보

수형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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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한자 金昌鎰
이명 金昌泳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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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만주방면 포상년도 1995 훈격 애국장
1922. 9.25 광정단원(匡正團員)으로 동단의 소대장 강승경(姜承慶)의 지휘 하에 김서운(金瑞雲), 한진술(韓鎭述)과 함께 함남(咸南) 삼수군(三水郡)에 들어와 영성 경찰관(嶺城警察官) 주재소(駐在所)를 습격, 순사를 처단하는 한편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피체(被逮)되어 무기징역(無期懲役)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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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함남 갑산(甲山) 사람이다. 광정단(匡正團)에서 활동하였다. 1922년 8월, 서간도 환인현(桓仁縣)에서 대한통군부(大韓統軍府)를 중심으로 한 여러 독립운동단체의 통합으로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가 조직될 무렵, 장백현(長白縣)에서는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흥업단(興業團)·태극단(太極團)·광복단(光復團) 등 4개단체가 통합하여 광정단을 조직하였다. 광정단 조직 당시 주요 간부를 보면, 단장 김호익(金虎翼), 총무장 윤덕보(尹德甫), 군무장 강진건(姜鎭乾), 재무장 김관용(金寬用), 비서장 장승언(張承彦) 등을 들 수 있다. 김창일은 이 광정단에 가입하여 활동 중, 1922년에는 소대장 강승경(姜承慶), 그리고 김서운(金瑞雲)·한진술(韓鎭述) 등 동지 30여 명과 함께 국내를 지키는 일본 경비관헌으로부터 무기와 금품, 탄약 등을 빼앗기 위하여, 동년 9월 20일 강승경의 지휘에 따라 폭탄 9개, 장총 34정, 권총 3정 및 1인당 탄환 40발 내지 1백 발을 휴대하고 장백현 16도구(道溝) 소덕수리를 출발하였다. 함경남도 삼수군(三水郡) 호화면(好化面) 대안에서 압록강을 건너 삼수군 내에 진입, 동원 25일 오전 4시경 동군 삼수경찰서 영성(嶺城)주재소를 포위하고 총을 발포하였다. 그리하여 동 주재소 소속 송정호(松井好) 순사를 사살하고, 굴내종삼(堀內宗三), 김동정(金東挺) 순사 등에게 상처를 입혔다. 그리고 또 영성리(嶺城里)에 사는 이석윤(李錫潤)의 집에 들어가 동 순사의 처 최(崔)씨를 위협하고, 군수품과 현금 만 원을 수거하였다. 그 후 김창일은 김서운·한진술 등과 함께 체포되어 함흥지방법원에서 소위 제령 제7호 위반, 폭발물 취체규칙 위반 및 강도살인 등 혐의로 무기징역을 받고, 경성복심법원에 공소하였으나 기각,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0집 698·699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4집 938면
  • 동아일보(1923. 6. 5)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도움말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김창일 김창영(金昌泳) 함경남도 갑산(甲山) -
본문
함경남도 갑산군(甲山郡) 운흥면(雲興面) 동신리(東新里)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01년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이명은 김창영(金昌泳)이다. 가족관계와 도만(渡滿) 경위는 자료의 한계로 알기 어려우나, 1922년 서간도(西間島) 창바이현(長白縣) 16도구(道溝) 소덕수리(小德水里)에 거주하며 광정단(光正團)의 단원으로 활동하였다.광정단은 1922년 4월경 창바이현에 본부와 지단(支團)을 설치하고 있던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흥업단(興業團)·대진단(大震團)·태극단(太極團) 등이 통합해 이루어진 독립군단이었다. 윤덕보(尹德甫)를 단장으로 한 본부인 총부(摠部)를 장백현 17도구 동평덕리(東坪德里)에 두고 재무·군사·서무·경호·의사·권업·문화·통신·회계·위생 등 부서를 16, 17, 18도구에 분산 배치하였다. 16도구 소덕수리는 최진용(崔鎭鏞)을 부장으로 한 경호부가 배치된 지역이었다.1922년 9월 20일 소대장 강승경(姜承慶)의 지휘 아래 38명으로 구성된 유격대의 일원이 되었다. 구성원 모두 장총 또는 권총과 40~100발의 탄환을 소지한 완전 무장의 대규모 유격대였다. 국경을 넘어 9월 25일 새벽 함경남도 삼수군(三水郡) 영성면(嶺城面)에 있는 일제 주재소 앞에 도착했다. 새벽 4시 대장 강승경의 명령에 의해 주재소를 향해 집중 사격을 가했다. 그리고 주재소 내부로 진입하여 당직 중인 일본인 순사 마쓰이(松井好)와 호리우치(堀內宗三), 한국인 순사 김동정(金東挺)을 향해 총격을 가했다. 마쓰이는 현장에서 즉사했고, 다른 두 명은 부상을 입은 채 피신하였다.유격대는 주재소를 장악한 후, 또 한명의 한국인 순사인 이석윤(李錫潤)의 집을 급습하였다. 주재소가 공격받는 소리를 듣고 이석윤이 집 밖으로 나갔기에 처단하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이석윤의 처 최씨에게 전투에 필요한 군수품과 현금을 군자금으로 징수하였다. 작전이 끝난 후 유격대는 마을로 통하는 모든 전신과 전선을 잘라버린 후 철수하였다.추격대의 출발을 늦추기 위해 전신과 전선을 잘랐지만, 일제의 경찰대가 곧 쫓아왔다. 강승경 대장의 지시에 의해 유격대를 나누어 귀대하던 중 동지 김서운(金瑞雲)·한진술(韓鎭述)과 붙잡혔다. 함흥지방법원에서 무기징역을 받고 항소했으나, 1923년 6월 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수형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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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형기록
순번 종류 죄명 처분(주문) 판결기관 판결일 제공
1 판결문 대정8년 제령 제7호 위반, 폭발물취체벌칙위반, 강도살인 공소 기각 경성복심법원 1923-06-08 국가기록원

묘소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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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정보 1
묘소구분 안내
미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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