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체(被逮) : 남에게 붙잡힘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제주 좌면(左面) 사람이다.
전라남도 공립사범학교(公立師範學校)에 재학 중이던 1929년 7월 초순 전남 광주(光州) 수피아여학교(須皮亞女學校) 뒷산에서 송동식(宋東植)·이신형(李信珩) 등의 동지들과 함께 사회과학의 연구를 목적으로 비밀결사 독서회(讀書會)를 결성하였다. 이들은 동년 9월 중순 광주형무소(光州刑務所) 뒷산에서 모임을 갖고 조직을 개편하였는데 그는 조직교양부 위원에 선임되어 조직 강화에 힘썼다.
1929년 11월 3일 광주역 앞에서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과 일본인 학교인 광주중학교 학생들 사이에 쟁투가 일어나자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 300여 명과 전남 공립사범학교 학생 및 광주 공립농업학교 학생들은 합동하여 광주시내의 요소요소에서 항일구호를 외치면서 시위행진을 전개하였다. 이에 학교에서는 다음날인 1929년 11월 4일부터 11일까지 휴교를 한 후 12일 개교하였다.
그러나 그는 개교한 날 첫시간에 다시 동지를 규합하여 광주시내를 행진하며 시위활동을 펴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그는 1930년 10월 18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및 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3년 6월형을 선고받고 공소하여 1931년 6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1930. 10. 18 光州地方法院)
- 判決文(1931. 6. 13 大邱覆審法院)
- 明治百年史叢書(金正明) 第1卷 分冊 721面
- 韓國獨立運動史(文一民) 238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3輯 264·266·1611∼1624·1633∼1654·1667∼1708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9卷 496·500·553·554面
- 朝鮮日報(1930. 10. 2, 10. 11, 10. 12, 10. 19, 1931. 6.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