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경기도 여주(驪州) 사람이다.
1908년 1월에 13도창의군(十三道倡義軍)을 조직한 이인영(李麟榮)의 아우이다. 13도창의군의 서울진공 때 형을 따라 종군하였으나 일군에게 패해 여주로 퇴각하였으며, 여기에서 다시 일군과 접전을 벌인 끝에 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1909년 6월 형 이인영이 붙잡혀 의진이 해산될 때까지 의병항전을 계속하였다.
그 뒤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 직후에는 의병 가족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형태의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비밀결사 민단조합(民團組合)을 조직하고 충북도지회장(忠北道支會長)이 되어 격문을 작성, 배포하며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1916년 8월경에 결사 사실이 발각되었다.
또한 1913년 9월경에는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임병찬(林炳瓚)·전용규(田鎔圭) 등과 함께 이름있는 의병장의 가족들을 규합하여 독립의군부(獨立義軍府)를 조직, 경향(京鄕) 각지에 조직과 인선을 마치었으며, 나아가 일제 내각총리대신 및 조선총독 등에게도 조국독립을 요구하는 항의서한을 보내고 격문을 작성하여 외국공관과 외국인에게 배부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1914년 4월경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그후 1921년 국외에서 독립운동을 펼치기 위하여 북간도로 가던 중 중국 동삼성(東三省) 일면파(一面陂)에서 중국 마적의 습격을 받아 사망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5卷 158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2輯 241·242面
- 日帝侵略下韓國36年史(國史編纂委員會) 第2卷 300面
- 高等警察要史(慶北警察部) 178·259·260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174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