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1909년 2월 보성(寶城)·순천(順天) 등지에서 활약하던 안규홍(安圭洪) 의병장의 휘하에 들어가 선봉장(先鋒將)이 되어 60~70정의 총기로 무장한 80~90명의 의병과 함께, 같은해 3월까지 보성(寶城)·장흥(長興)·강진(康津) 등지를 전전하며 항전하였다.
3월 중에는 염인서(廉仁瑞)·염문명(廉君明)·임하중(林夏仲) 등과 함께 특히 보성군 봉동(鳳洞)에 살며 양민으로부터 금품을 약취하던 박봉조(朴鳳朝)를 찾아가 타살하였다. 또한 1909년 7월에는 나주(羅州)·강진 일대에서 활약하던 심남일(沈南一) 의병장의 휘하로 옮겨가 역시 선봉장으로 장흥·강진·보성 등지를 무대로 항전을 계속하였다.
이어 8월에는 다시 안규홍 휘하로 돌아와 총기류 확보에 노력하였으며, 1909년 말에 부하 100여명을 거느리고 독립의병장으로 활동하다가 강진 실공장(實公場) 병영 부근에서 붙잡히고 말았다.
그 뒤 1910년 6월 28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소위 폭동 및 강도·모살(謀殺)죄 등으로 교수형을 선고받았으며, 같은 해 8월 20일 대구공소원에서 공소 기각, 9월 15일 고등법원에서 상고 기각되어, 9월 30일 형이 집행됨으로써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1910. 8. 20 大邱控訴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1卷 645面
- 明治百年史叢書(金正明) 第1卷 83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別集 第1輯 898·899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