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2월경 (月頃) 안계홍 의병장 (安桂洪義兵將) 이 전남 (全南) 보성 (寶城) 에서 거의 (擧義) 하자 입진 (入陣) 도포장 (都砲將) 좌우포장 (左右砲將) 좌우익장 (左右翼將) 으로 전남 (全南) 보성군 (寶城郡) 을 비롯하여 동복 (同福) 순천 (順川) 장흥군 (長興郡) 에서 일군 (日軍) 과 전투 (戰鬪) 하고 친일 (親日) 일진회원 (一進會員) 을 색출 (索出) 하여 주살 (誅殺) 하고 의병 (義兵) 의 명목 (名目) 으로 양민 (良民) 으로부터 재물 (財物) 을 겁취 (劫取) 한 자 (者) 를 살해 (殺害) 하며 활동 (活動) 하다 체포되어 교 (絞) 를 선고 (宣告) 받았으며 의진 (義陣) 의 간부 (幹部) 로서 순국 (殉國) 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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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전남 보성(寶城) 사람이다. 1908년 2월경 안규홍(安圭洪) 의병장이 전남 보성에서 거의(擧義)하자, 그 휘하에 들어가 도포장(都砲將)·좌우포장(左右砲將)·좌우익장(左右翼將)이 되어 총으로 무장하고 보성·순천(順天)·동복(同福)·장흥(長興) 등지를 전전하며 일군과 항전을 벌였다. 같은해 4월 6일에는 동료 의병 30여 명과 함께 의병을 가탁(假託)해 양민으로부터 재물을 약탈한 강사문(姜士文 : 龍彦)을 포박, 순천군 문전면(文田面) 고부기산중(古府基山中)에서 총살 단죄하였다. 이어 1909년 9월 4일에도 동료의병 30여 명과 함께 순천 낙서면(洛西面) 상고리(上古里)로 가서 양민으로부터 재물을 탈취하던 일진회원(一進會員) 이용서(李用西)를 체포, 참살(斬殺)하는 등의 활동을 벌였다.그러나 같은해 10월 1일 광주경찰서에 붙잡힌 그는 이듬해인 1910년 3월 29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소위 폭동 및 살인죄로 교수형을 선고받고 공소하였으나 6월 2일 대구공소원에서 기각되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1910. 6. 2 大邱控訴院)
- 明治百年史叢書(金正明) 第1卷 70·76·104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1卷 607·652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別集 第1輯 840·841·842·1218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3輯 321·323·359·344·348·353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