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전남 보성(寶城) 사람이다.
1908년 2월경 안규홍(安圭洪) 의병장이 보성에서 거의(擧義)할 때 그 휘하에 들어가 좌우포장(左右砲將)·좌우익장(左右翼將)이 되어 총으로 무장하고 보성·순천(順天)·동복(同福)·장흥(長興) 등지를 전전하며 일군과 교전을 벌였다. 같은해 4월 6일 동료 의병 30여명과 함께 의병의 이름을 가탁(假託)하여 양민의 재물을 탈취하던 강사문(姜士文 : 龍彦)을 포박, 순천군 문전면(文田面) 고부기산중(古府基山中)에서 총살 단죄하였다.
이어 5월초에는 일진회원(一進會員)으로 일제의 밀정(密偵) 노릇을 하던 염영화(廉永化)를 보성군 봉덕면(鳳德面) 법화촌(法化村) 집에서 역시 총살, 단죄하였으며 12월 17일에도 동복군 내남면(內南面) 주정리(舟町里)에서 양민의 재산을 탈취하던 강모(姜某)를 잡아서 익사시켰다.
이듬해인 1909년 3월 6일에는 역시 양민의 재물을 강탈하던 일진회원 박봉조(朴鳳朝)를 잡아 머리를 난타하여 주살(誅殺)하였고, 9월 4일에도 역시 양민의 재물을 탈취하던 이용서(李用西)를 참살(斬殺)하는 등 주로 민간에 폐해를 입히던 일제 앞잡이들을 단죄하는 활동에 주력하였다.
그 뒤 1909년 9월 18일 일경에 붙잡혀 1910년 3월 29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소위 폭동 및 살인죄로 교수형을 선고받고 공소하였으나 6월 2일 대구공소원에서 기각되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輯 840∼842面
- 明治百年史叢書(金正明) 第1卷 70·76·104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1卷 652面
- 判決文(1910. 6. 2 大邱控訴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