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전남 보성(寶城) 사람이다.
1908년 2월 보성에서 거의(擧義)한 안규홍(安圭洪) 의병장 휘하에서 도십장(都什長)으로 참가하였다가 운량관(運糧官)이 되어 군도와 권총으로 무장하고 같은 해 8월경 보성·장흥(長興)·동복(同福)·순천(順天) 등지에서 일군과 교전을 벌였다.
그 뒤 1909년 3월 6일에는 보성군 봉동(鳳洞)에 살던 일진회원(一進會員) 박봉조(朴鳳朝)를 잡아 목봉(木棒)으로 머리를 난타해 주살(誅殺)하였다. 이어 같은 해 6월 13일에는 안규홍 의병진의 선봉장 임창모(林昌模)와 함께 장흥군 회령면(會寧面) 정리(鼎里)에 거주하던 문남서(文南瑞)를 같은 군 천포면(泉浦面) 화당리(花堂里)로 데리고 가 군자금으로 56원을 모금하였으며, 6월 30일에도 역시 임창모와 함께 보성군 남이면(南二面) 칠동(七洞)의 최태경(崔泰京)의 집으로 가 군자금을 요구하였으나 불응하자 즉시 사살하였다.
그 뒤 일제의 소위 '남한대토벌자전(南韓大討伐作戰)'이 벌어지던 기간인 1909년 9월 18일에 부하 30여명과 함께 보성에서 붙잡혀 1910년 3월 30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소위 폭동 및 강도·모살(謀殺)죄로 교수형이 선고되었으며 같은 해 6월 9일에는 대구공소원에서 6월 27일에는 고등법원에서 항고 기각되어 형이 집행되므로써 순국하고 말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1卷 651面
- 判決文(1910. 6. 9 大邱控訴院)
- 全南道誌(1) 786·796面
- 明治百年史叢書(金正明) 第1卷 70·76·103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別集 第1輯 875·876·877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