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박영근 (朴永根) 과 나주 (羅州) 에서 기의 (起義) 하고 동년 (同年) 11월 1일 심남일 의진 (沈南一義陣) 에 참진 (參陣) 하여 1908.2월 후군장 (後軍將) 으로 노병우 (盧炳友) , 최우평 (崔羽平) 과 같이 임명 (任命) 되어 총기 (銃器) 40여정 (餘挺) 으로 무장 (武裝) 된 부하 (部下) 40여 (餘) 의병 (義兵) 을 지휘 (指揮) 하여 무안 (務安) , 영암 (靈岩) , 남평 등지 (南平等地) 에서 왜군 (倭軍) 과 전투 (戰鬪) 하고, 1909. 7월20여 (餘) 의병 (義兵) 을 지휘 (指揮) 하여 일인 (日人) 을 총살 (銃殺) 하는 등 활동 (活動) 하다 순국 (殉國) 한 상당 (相當) 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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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진(義陣) : 의병의 군진. 의병 부대를 배치한 것.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8권(1990년 발간)
전남 나주(羅州) 사람이다.
1907년 박영근(朴永根)·유종환(兪鍾煥)과 함께 나주(羅州)에서 기의한 그는 1908년 2월에 심남일(沈南一) 의진의 후군장으로 총기 40여정으로 무장한 40여명의 의병을 지휘하여 무안(務安)·영암(靈岩)·남평(南平) 등지에서 일군과 교전하였다. 그리고 1909년 7월에는 사초십장(四哨什長) 정낙중(鄭洛中) 등 20여명의 의병을 지휘하여 일인 율산학길(栗山鶴吉)을 총살하였으나, 1909년 일군에 붙잡혀 광주(光州)로 이송 도중 일군 2명을 때려눕히고 탈출을 기도하다가 실패하고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6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35·76·83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1권 868·1218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권 538·603·645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28·37·49·57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2권 573면
- 전남폭도사 364·393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33면
- 매천야록 51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