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8권(1990년 발간)
전남 곡성(谷城) 사람이다.
1927년 10월 광주농업학교(光州農業學校)에 재학하고 있을 때 광주(光州) 누문동(樓門洞) 김태호(金台鎬)의 집에서 김복만(金福萬)·유상걸(柳上杰) 등과 함께 성진회(醒進會)의 재건방안을 논의하고 비밀결사인 사회과학연구회(社會科學硏究會)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이어 1928년 6월 30일 송성수(宋聖秀)·김태식(金台植) 등과 같이 광주농업학교(光州農業學校) 재학 당시 이 학교에 재직 중인 악질교사 배척을 위한 동맹휴학을 주도하다가 무기정학처분을 받고 붙잡혀 1928년 9월 28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형을 받았다.
1929년 11월 12일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시위를 주동하며 활동하다가 붙잡혀 1930년 10월 27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공소하였으나, 1931년 6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후 1932년 1월 7일 전남 곡성군(谷城郡) 옥과면(玉果面)에서 정동화(鄭東華)·한명덕(韓明德)과 함께 농민단체인 옥과노동회(玉果勞動會)의 재건을 위한 방안을 협의하고, 회원 약 1,900여명을 규합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다가 붙잡혀 1934년 11월 27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6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1931. 6. 13 대구복심법원)
- 판결문(1934. 11. 27 광주지방법원)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국사편찬위원회) 8권 915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9권 490·498·511면
- 판결문(1928. 9. 28 광주지방법원)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726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238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3권 265·902·1500·1626·1656·166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