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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50457
성명
한자 朴仁生
이명 朴仁性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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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년도 2005 훈격 대통령표창
광주공립농업학교(光州公立農業學校) 출신으로 1926년 9월 전남(全南) 광주(光州)에서 광주고등보통학교(光州高等普通學校) 출신인 장재성(張載性)·왕재일(王在一) 등과 학생비밀결사를 조직하기로 합의하고, 동년 11월 독립 및 공산주의사회의 실현을 목적으로 성진회(醒進會)를 조직하여 서기(書記)를 맡는 등의 활동을 전개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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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광주공립농업학교(光州公立農業學校)를 나와 1926년 11월 전남 광주에서 광주고등보통학교(光州高等普通學校) 출신 장재성(張載性)·왕재일(王在一) 등과 학생비밀결사 성진회(醒進會)를 조직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이들은 평소에 일제의 조선 지배에 반감을 품고 조선의 독립을 꿈꾸었으며 민족의식이 강했고, 당시 지식층 사이에서 광범하게 수용되고 있던 사회주의 사상에도 관심을 갖고 있었다.

성진회는 ① 일제의 기반에서 한국의 독립을 쟁취한다. ② 일제의 식민지 노예교육을 절대 반대한다. ③ 언론·출판·결사의 자유를 요구한다 등을 강령으로 삼았다.

박인생은 동회의 서기를 맡아 회의 운영을 주도했다. 그러나 성진회는 회원 중 한 사람이 광주경찰서 형사와 혈연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비밀이 누설될 염려가 있어, 결사 5개월 만인 1927년 3월 정남균의 집에서 전술상 해산을 결의하였다. 이후 비밀보장을 위해 모임을 갖지는 않았지만 이들 구성원들은 각 학교 단위별로 활동을 계속해 나갔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9권 489∼490면
  • 判決文(光州地方法院, 1930. 10. 27)
  • 光州學生獨立運動史(光州學生獨立運動同志會, 1974) 42·100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3권 1628면
  • 豫審終結決定書(光州地方法院, 1930. 7. 26)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도움말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박인생 박인성(朴仁性) 제주(齊州) 성진회
본문
1903년 8월 19일 전라남도 제주도(濟州島) 표선면(表善面) 성읍리(城邑里, 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에서 태어났다. 박인성(朴仁性)이라는 이명이 있다. 고향에서 일찍부터 청년교육에 관심을 보인 듯하다. 1923년 11월 3일 고향인 성읍리에서 교풍청년회(矯風靑年會)가 야학을 열자 여러 지역 유지들과 함께 야학을 후원하였다.고향을 떠나 광주공립농업학교(光州公立農業學校)에 진학하였다. 농업학교 재학 중 사회주의 사상을 접하고 이에 공명(共鳴)하였다. 5학년이던 1926년 9월에는 장재성(張載性)·왕재일(王在一)과 교류하였다. 당시 광주고등보통학교(光州高等普通學校) 학생이던 장재성과 왕재일은 일찍부터 일제의 식민지배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이들은 “일제의 지배에서 벗어나고 조선 사회의 제도적 모순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공산제를 기반으로 하는 신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고 보았다. 또한 공산제 사회가 실현되면 자연스럽게 조선도 독립될 것”으로 생각하였다. 장재성·왕재일과 생각이 같았으므로 의기투합하여 함께 비밀결사를 조직하기로 뜻을 모았다.결사 조직을 위해 농업학교에서 같은 사상을 품고 있는 학생들을 규합하기로 하였다. 장재성과 왕재일은 고등보통학교에서 동지를 모으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최규창(崔圭昌)·김광용金(匡溶)·문승수(文升洙)·김종석(金鍾奭)·김한필金(漢必)·임주홍(林周弘)·정우채(鄭瑀采)·정남균(鄭南均)·정동수(鄭東秀)·국순엽(鞠淳葉)·안종익(安鍾翊)·김창주金(昌柱)·최용석(崔鎔錫) 등 여러 동지를 확보하였다. 이들은 11월 3일 광주 읍내 부동정不(動町, 현 광주광역시 동구 불로동) 최규창의 하숙집에서 모임을 갖고 성진회(醒進會)를 조직하였다.성진회는 ‘공산제도의 실현’과 ‘조선민족의 독립’을 목적으로 하였다. 이를 위해 매월 첫째, 셋째 토요일에 모임을 갖고 공산주의 이론을 연구하기로 하였다. 조직 운영을 위해서 매월 10원의 회비를 납부하였다. 성진회의 서기(書記)를 맡아 결사 운영을 주도하였다. 왕재일은 총무, 장재성은 회계를 각각 담당하였다.비밀결사였으므로 회원들은 서로 모임의 비밀을 엄수할 것을 강조하였고, 조직 확대를 위해 동지 규합에 노력할 것을 당부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이탈자가 생기기 시작하고, 주변 관계로 인하여 비밀이 누설될 우려도 커졌다. 그리하여 1927년 3월 정남균의 집에서 모임을 갖고 해산을 결의하였다. 이즈음 농업학교를 졸업하였고, 얼마 후인 1929년 5월 12일 사망하였다.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묘소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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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정보 1
묘소구분 소재지
국내산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관련 현충시설 정보

도움말
관련 현충시설 정보
순번 종류 시설명 소재지
1 사당 창열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2 기념관 제주항일 기념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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