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6권(2021년 발간)
1929년 2월 전주공립보통학교 3학년 재학 당시 김규선은 동맹휴교를 주도하다가 체포됐다. 같은 해 2월 3일 대구복심법원(大邱覆審法院)에서 이른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건 위반’으로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로 인해 전주공립보통학교에서 퇴학을 당했다.
1930년 2월 초 전주공립고등보통학교 3학년 고창동(高唱東), 박재선(朴在善)과 함께 독서회를 조직했다. 이 독서회는 잠시 해산됐으나, 같은 해 2월 하순경 다시 박재선 외 4명에게 독서회를 다시 조직할 것을 설득해 재결성됐다. 4월 하순경 김규선은 자신의 집에서 이겸중(李謙重) 등 5명과 함께 독서회를 조직하고 지도책임자를 맡았다. 이들은 독서회 산하에 전교지도부(全校指導部)와 학년지도부를 구성하고, 학생들을 포섭해 공산주의를 연구했다. 1931년 5월 20일경 학년 변동에 따라 독서회를 재편하고 계속 지도책임자를 담당했다. 이어 5월 말경에는 전주사립신흥학교(全州私立新興學校) 조균(趙筠)에게 3학년을 대상으로 독서회를 조직하도록 권유했다. 한편 김규선은 전주합동노동조합(全州合同勞動組合) 간부를 역임하며 삼공정미(三共精米) 동맹파업사건 당시 노동자들을 대변했다.
1931년 7월경 한종식(韓宗植)은 전주 학생들의 적화(赤化)를 위해 학생들로 하여금 공산주의 연구의 독서회를 조직하게 할 것, 공산주의 의식 교양, 독서회 간의 연락 통일과 혁명기념일에 집회 개최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이를 실행하기 위해 김규선 등은 학생 송별회와 환영회 개최,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실세 조사 등에 대해 협의했다. 같은 해 12월경부터 1932년 2월경까지 김철주(金鐵柱)가 발행한 ‘반전(反戰) 뉴스’를 독서회원들에게 배포하도록 주도했다. 또한 김문옥(金文玉)에게서 공산주의운동 잡지 『코뮤니스트와 봉화(烽火)』9월호와 10월호를 받아 배포했다.
김규선은 전주지역에서 독서회 조직과 활동,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전주경찰서(全州警察署)의 취조를 여러 차례 받았다. 이후 적색비밀결사 조직 활동을 하다가 다시 체포됐다. 1934년 3월 31일 전주지방법원(全州地方法院)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았다. 1934년 11월 29일 대구복심법원(大邱覆審法院)에서 형이 확정돼 전주형무소(全州刑務所)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35년 11월 29일 석방됐다.
정부는 202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判決文)(전주지방법원:1934. 3. 31)
- 동아일보(東亞日報)(1929. 8. 11, 1930. 11. 6, 11. 13, 1931. 3. 21, 4. 9, 4. 18, 4. 19, 9. 6, 1932. 2. 5, 1933. 12.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