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6월 제주공립농업학교생 (濟州公立農業學校生) 으로 일인 교사 (日人敎師) 유전언이 (柳田彦二) 의 한국인 차별 및 부당한 교육에 항거하여 동맹휴학 (同盟休學) 을 하였다가 퇴학당하였고 동년 9월 경성사립중앙고등보통학교 (京城私立中央高等普通學校) 에 편입하여 1927년 동맹 휴교 (同盟休校) 투쟁을 전개하였다가 일시 구속되었고, 1929년 조선학생과학연구회 (朝鮮學生科學硏究會) 와 고려공산청년회 (高麗共産靑年會) 에 가입하여 동년 7월 사립양정고등보통학교 (私立養正高等普通學校) 교정에서 수명을 모아놓고 공산주의 사상을 전파하였다가 체포되어 징역 2년 6월 (미결구류 (未決拘留) 180일 통산 (通算) )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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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1920년대 후반 제주농업학교와 중앙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 동맹휴학을 주도하며 항일학생운동을 전개하였다. 1926년 6월 제주공립농업학교에 재학 중 일본인교사 야나기다 히코지[柳田彦二]의 한국인 차별 및 부당한 교육에 항거하여 동맹휴학을 전개하다가 퇴학당하였다. 서울로 올라온 그는 중앙고등보통학교에 편입하여 재학 중 1927년 동맹휴교 투쟁을 전개하다가 일경에 일시 구속되기도 했다. 그는 평소 일제 식민통치의 모순과 부당성에 대한 저항의식이 높았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사회과학연구에 관심을 기울였다. 1929년에는 학생운동단체인 조선학생과학연구회(朝鮮學生科學硏究會)에 가입하는 한편 고려공산청년회(高麗共産靑年會)에 가입하여 활동을 전개해 갔다. 1929년 7월 양정고등보통학교 교정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일제 식민지 지배체제를 비판하는 모임을 갖다가 체포되어 징역 2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東亞日報(1926. 7. 18, 1932. 9. 13)
- 判決文(京城地方法院, 1932. 7. 7)
- 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3권 986면
- 中央高普生 取調狀況 및 學校狀況에 관한 件(京鍾警高秘제11029호의 30, 1927. 11. 16) 思想問題에 關한 調査書類 제3권
- 日帝侵略下韓國三十六年史(國史編纂委員會) 제10권 135면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국사편찬위원회) 별집 제1권 10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