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훈전자사료관

통합검색
독립유공자 명단보기
 

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4882
성명
한자 韓錦源
이명 韓承贊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광복군 포상년도 1990 훈격 애국장
1938. 6 월 민족혁명당(民族革命黨) 의무책임자(醫務責任者)임명(任命)(後) 1938. 10.10 조선의용대 발족(朝鮮義勇隊發足)에 따라 의무조장(醫務組長)으로 활동(活動)하다가 1942. 4. 1. 광복군(光復軍) 제 1 지대 의무주임(醫務主任)으로 있으면서 1945. 8. 15 광복(光復)에 이르기까지 7년간(年間)에 걸쳐 활동(活動)한 사실이 확인됨
원문보기 한자보이기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평북 의주(義州) 사람이다.

1934년 동경의괴대학을 졸업한 후 고향인 평북 의주에서 개업하고 있던 중 중국으로 망명한 친형 한철(韓哲)과 연락이 되어 국내에 파견되는 독립운동가들을 지원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그도 중국으로 망명하였다고 한다.

1934년 5월에서 1938년 6월까지 중국 호남성(湖南省) 한구(漢口)에 정착하여 한 철 부부와 합류하고 형수인 김영란(金英蘭)이 경영하던 박애(博愛)병원에서 의료사업에 종사하며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고 한다.

1938년 6월부터 1945년 8월까지 민족혁명당(民族革命黨)의 의무책임자로 임명되어 활동하였으며, 1938년 10월 10일 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가 창설됨에 따라 광서성(廣西省) 계림(桂林)으로 이동한 뒤 조선의용대의 의무조장(醫務組長)으로 활동하였다.

1942년 4월 1일 조선의용대가 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 제1지대(第1支隊)로 편입된 후 1945년 8월 15일 광복때까지 1지대의 의무주임으로 활동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日帝侵略下韓國36年史(國史編纂委員會) 第12卷 409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6卷 370·371·737·609面
  • 明治百年史叢書(金正明) 第2卷 687面
  • 日帝侵略下韓國36年史(國史編纂委員會) 第13卷 619面

묘소정보

도움말
묘소정보 1
묘소구분 안내
미확인
  • 해당 유공자는 묘소 위치 확인이 필요한 독립유공자 입니다. 더보기

감사의 글 Total 0
목록 개수

인쇄 목록
  •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십시오.
  • 이용자의 참여가 사이트 가치 향상에 큰 도움이 됩니다.
  • 하단의 '오류신고목록'을 이용하시면 신고 내용의 적용여부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오류 신고 시, 개인정보 입력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 독립유공자 공적조서는 정부포상 결정당시의 ‘공적조서’를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 독립유공자 공훈록은 공적조서상 근거정보를 기본바탕으로 전문가의 원고집필을 통해 발간된 책을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것입니다.
  • 따라서, ‘공적개요(공적조서)과 공적내용(공훈록)’은 원칙적으로 수정불가하며,
  • 다만, 온라인으로 제공되는 기본정보(성명, 생몰일자, 본적지)에 대한 사항은 ‘오류신고’를 통해 신청 가능합니다.
  • 하단의 '오류신고목록'을 이용하시면 신고 내용의 적용여부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오류 신고 시, 개인정보 입력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페이지 별 오류신고
화면(사료)위치 독립유공자 공적정보 > 한금원(관리번호:4882) 오류 유형 *
오류 제목 *
오류 내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