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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4673
성명
한자 申麟休
이명 龜休, 文化, 松坡, 申文化, 申松坡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의병 포상년도 2006 훈격 건국포장
1908년 2월 안규홍(安圭洪) 의병장(義兵將) 거의시(擧義時)입진(入陣)하여 유격장(遊擊將)으로서 1909년 9월 안규홍(安圭洪) 의병장이 일군(日軍)체포(逮捕)되기까지 파청(巴靑), 진산(眞山) 등지의 전투(戰鬪)참전(參戰)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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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전남 보성 출신으로 안규홍의진(安圭洪義陣)에 참여하여 유격장(遊擊將)으로 활동하였다.

안규홍은 가세가 빈한하여 머슴으로 모친을 봉양하였다. 1907년 군대해산 후 거의를 목적으로 일심계(一心契)를 조직하고 주인에게 군량과 자금을 받아내는 한편, 참봉 안극(安極)에게도 무기와 자금을 제공받았다. 1908년 2월 관북 출신의 강성인(姜性仁)과 합세하여 병력 70여 명으로 대오를 정비한 후 의병대장으로 추대되었다. 안규홍의진은 1908년 2월부터 1909년 9월 25일 체포될 때까지 보성·진산·순천·고흥·장흥·광양·함평 등지에서 대일 항전을 전개하였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1908년 2월 보성으로 들어오는 일본군에 대한 기습작전을 전개하여 전군을 궤멸시킨 파청대첩(巴靑大捷)과 1908년 8월 24일 진산(眞山)에서 일군 수비대 및 기병과 격전을 벌여 일본군 5명에게 중상을 입히고 크게 이긴 진산대첩(眞山大捷) 등이다. 그리고 1909년 5월 이후 함평의 심남일(沈南一)과 연합전선을 꾀하여 각처에서 유격전을 감행하였다. 안규홍은 1909년 9월 25일 보성에서 광주경찰서 토벌대에게 체포되어 1911년 5월 5일 대구감옥에서 교수형에 처해져 순국하였다.

신인휴는 1908년부터 안규홍의진의 유격장으로 파청대첩을 비롯하여 대원사(大原寺)·운월치(雲月峙)·진산(眞山)·서봉(棲鳳) 등지의 전투에서 크게 활약하였다. 1909년 9월 25일 안규홍이 체포된 뒤 향리에서 피신생활을 하다가 병사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澹山實記(1983. 2. 20) 追錄 98~99, 107면
  • 高靈申氏世譜(1976)
  • 敬通(1985. 5)

묘소정보

도움말
묘소정보 1
묘소구분 소재지
국내산재 전라남도 보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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