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1919년 3월 1일 보성사 인쇄원인 인종익은 서울의 이종일(李鍾一) 집에서 독립선언서 1,700여 장을 충청북도(忠淸北道) 청주(淸州)와 전라북도 전주에 배포할 것을 부탁받았다. 그 날 인종익은 전라북도 전주에 도착하여 천도교 전주교구실에서 「독립선언서」를 김진옥에게 건네고 지역 주민들에게 배포하게 하였다. 김진옥은 천도교 신자 민영진(閔永鎭)·조성덕(趙聖德)·김성문(金成文)·김영호(金永浩)에게 의뢰하여 독립선언서를 전주 읍내에 배포하게 했다.
전주 고사정(高砂町) 천도교 교구실에서 민영진에게서 「독립선언서」 9장을 받은 김태경은 전주군 신양면(新陽面) 신교리(新橋里)의 유원(柳謜)에게 4매를, 한광진(韓光鎭)·정명섭(丁文明)·채춘만(菜春萬)·유선일(柳善一) 등에게 5매를 배포하고 독립만세운동 참여를 권유하였다. 3월 3일 「독립선언서」를 발견한 일본 경찰은 예비검속을 실시하고 각 학교에 휴교령을 내려 삼엄한 경비를 펼쳤으나, 3월 13일 정오 전주에서는 천도교와 기독교계, 학생들을 중심으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체포된 김태경은 1919년 4월 18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과 1919년 5월 16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判決文)(대구복심법원:1919. 5. 16)
- 수형인명부(受刑人名簿)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5집 147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