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6권(2021년 발간)
1933년 6월까지 아버지의 한약상을 돕다가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됐다. 당시 서대문형무소(西大門刑務所)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공산주의를 접했다.
1934년 12월 아산에서 한명식에게 함경남도(咸鏡南道) 정평(定平)에서 일어난 제2적색농민조합 사건에 대해 얘기했다. 그는 “표면적으로는 일본기 게양대를 만들어 일제의 신용을 받고, 진흥회를 통해 농촌진흥운동인 것처럼 표방하였으나, 이면에서는 동굴에서 비밀회의를 거듭하며 농민조합을 재건한 것이었다”고 했다. 동시에 “장래 공산주의 사상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경찰이나 민중의 주목을 끌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며 적색농민조합 조직과 지하잠행운동 방법을 제안하는 등 농민조합 활동을 주도했다.
1935년 2월 12일경 홍성공업학교(洪城工業學校) 학생들에게 발송된 격문사건이 발생하자 이선준은 이에 연루돼 체포됐다.
이선준은 1933년 8월 공주지방법원(公主地方法院)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가 1934년 9월 1일 감형돼 출옥했다. 이후 아산에서 농민조합 조직과 공산주의 사상운동을 하다가 재차 체포됐다. 1935년 6월 17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공소를 제기했으나 9월 17일 경성복심법원(京城覆審法院)에서 ‘공소이유 없음’으로 1심과 같은 선고를 받았다.
정부는 202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判決文)(경성복심법원:1935. 9. 17)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8) 제14집 26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