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경북 안동(安東) 사람이다.
1921년경 비밀결사 의용단(義勇團)에 입단하여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의용단은 김찬규(金燦奎) 등이 만주 길림(吉林)의 군정서(軍政署)와 연결하여 군자금을 지원을 목적으로 결성한 독립군 지원단체로서 주로 경상도 일대를 무대로 활동하였다.
그는 1922년 10월 이응수(李應洙)·이종국(李鍾國) 등과 함께 대구 공설운동장에 모여 부호들을 대상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수합하기로 결의하고 경북 안동을 비롯한 영천(永川)·군위(軍威)·영일(迎日)과 경남 창녕(昌寧)등지의 경상도 일대에서 군자금 모집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때 이들은 독립운동자금요구서 및 시국에 대한 경고문, 길림 군정서 발행의 사형선고서와 같은 문서 등을 각처의 부호들에게 우편으로 우송하였으나 친일부호들의 외면으로 인하여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그러던 중 이러한 일이 일격에 발각됨으로써 그는 1922년 11월 대구 계림여관(鷄林旅館)에서 투숙객으로 위장 은신하고 있던 중 붙잡혔다.
이 일로 그는 1923년 12월 22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매일신보(1922. 12. 21, 12. 30)
- 예심종결결정서(1923. 9. 30. 대구지방법원)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0집 747∼750면
- 고등경찰요사(경북경찰부) 208∼211면
- 판결문(1923. 12. 22. 대구지방법원)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국사편찬위원회) 제6권 935면
- 동아일보(1922. 12. 20, 12. 22, 12. 23, 12.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