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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공자정보

수형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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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한자 閔昌植
이명 김무, 쥬라블례프, 박무, 쥬라블레프, 박무, 김무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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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국내항일 포상년도 2007 훈격 애족장
1925년 서울에서 경성인쇄직공조합(京城印刷職工組合)을 결성하고 상무집행위원(常務執行委員)으로 동년(同年) 6월 대동인쇄(大同印刷)·창신인쇄(倉新印刷) 직공들과 함께 동맹 휴업을 벌이는 등 노동자의 권익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1925년 고려공산청년회(高麗共産靑年會)에 가입하여 청년운동을 전개하였고, 이듬해 3월 조선공산당(朝鮮共産黨)에 입당하여 활동하다가 1926년 6월 6·10 만세운동 격문의 인쇄를 담당하고 원산(元山)평양(平壤)에 파견되어 선전문을 배포하다가 체포(逮捕)되어 징역 3년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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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격문(檄文) : 1. 어떤 일을 여러 사람에게 알리어 부추기는 글. 2. 급히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각처로 보내는 글. 3. 군병을 모집하거나, 적군을 달래거나 꾸짖기 위한 글.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민창식은 중동학교(中東學校)에서 수학한 후 대동인쇄사와 경성일보·매일신보 등의 신문사 인쇄직공으로 일했다. 1920년대 들어 연우사(鉛友社) 동인, 신흥청년동맹(新興靑年同盟) 회원, 혁청당(革靑黨) 당원으로 활동하며 화요회 회원이 되었다.

1925년 서울에서 경성인쇄직공조합(京城印刷職工組合)을 결성한 민창식은 상무집행위원으로 활동하며 인쇄직공 등의 노동자 권익 확보를 위해 힘쓰며 대동인쇄주식회사(大東印刷株式會社)·창신인쇄주식회사(倉新印刷株式會社) 파업 등에 참여했다. 당시 대동인쇄주식회사의 직공 파업은 인쇄소 직공들의 불합리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일어난 것으로, 회사 측은 직공 측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해놓고는 오히려 주모자 등을 해고하였다. 이에 다시 들고 일어난 인쇄소 직공들의 투쟁은 직공들의 승리로 끝난 바 있었다. 이러한 때에 그는 직공들과 함께 동맹 휴업을 벌이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 부산직공파업 때에도 이를 원조코자 ‘착취계급과 피착취계급’을 강연하기도 했다.

같은 해 고려공산청년회(高麗共産靑年會)에 가입한 민창식은 활동범위를 넓혀 청년운동 및 사회주의 활동을 벌여 나갔다. 1926년 3월 조선공산당(朝鮮共産黨)에 입당하여 경성부 위원으로 인쇄직공조합이 설치된 경성부 제2구 제1야체이카의 책임자가 되었다.

1926년 6·10만세운동 당시 격문의 인쇄와 배포를 담당한 민창식은 만세운동의 전국확대를 위해 원산과 평양 등지에서 선전문을 배포하던 중 일경에 붙잡혔다. 1928년 2월 경성지방법원에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7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조선인쇄직공조합총연맹 창립총회의 건(1926. 3. 22) 사상문제에 관한 조사서류
  • 스탈린 시대(1934-38년) 정치탄압 고려인희생자들(모스크바 삼일문화원:2000) 1권 68면
  • 高等警察要史(慶北警察:1929)
  • 왜정시대인물사료 1권
  • 사회주의운동 인명사전(창작과비평사:1996) 176·177면
  • 피의자 민창식 신문조서(1926. 8. 16)
  • 경성인쇄직공조합 잡지 발간 계획에 관한 건(1925. 5. 27) 검찰사무에 관한 기록 2
  • 東亞日報(1925. 12. 5, 1927. 4. 3)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도움말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민창식 쥬라블례프, 박무, 김무 서울 대동인쇄주식회사 직공 파업, 6.10만세운동
본문
1899년 9월 21일 서울 안국동(安國洞)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쥬라블례프·박무·김무 등이 있다. 어려서 집안에서 한학을 익히고, 중동학교(中東學校)를 다닌 후, 대동인쇄사와 경성일보·매일신보 등의 신문사 인쇄직공으로 일하였다.1920년대 초반 연우사(鉛友社) 동인·신흥청년동맹(新興靑年同盟) 회원, 혁청당(革靑黨) 당원으로 활동하며 화요회 회원이 되었다. 1925년 서울에서 경성인쇄직공조합(京城印刷職工組合)을 결성하고 상무집행위원으로 활동하며 인쇄직공 등의 노동자 권익 확보를 위해 힘쓰며 대동인쇄주식회사(大東印刷株式會社)·창신인쇄주식회사(倉新印刷株式會社) 파업 등에 참여하였다. 1925년 8월에 창립된 무산청년단체인 한양청년연맹의 검사위원, 1925년 7월에 창립된 경성노동연맹의 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다.1925년 8월에 일어난 대동인쇄주식회사의 직공 파업은 인쇄소 직공들의 불합리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일어난 것으로, 직공들의 단합된 행동에 회사 측이 직공조합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하면서 수습되는 듯 하였다. 그러나 회사 당국이 오히려 주모자를 해고하자, 이에 인쇄소 직공들의 단합시켜 직공 투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 파업을 경험하면서 노동자의 단결과 자각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교양있는 노동자’가 될 것을 역설하였다. 그리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각종 강연에 나서는 한편 다른 노동조합과도 동맹휴업을 벌이는 등 부당한 노동자 처우에 맞서 싸웠다. 12월 부산직공파업 때에도 이를 원조코자 ‘착취계급과 피착취계급’을 강연하며 일본제국주의체제하의 경제적 모순을 비판하기도 하였다. 같은 해 고려공산청년회(高麗共産靑年會)에 가입하여 활동범위를 확산시켜 청년운동과 사회주의 활동을 벌여 나갔다.1926년 3월 이준태의 권유로 조선공산당(朝鮮共産黨)에 입당하여 경성부 위원이 된 후 인쇄직공조합이 설치된 경성부 제2구 제1지부의 책임자가 되었다. 이후 불꽃사(火花社) 동인으로 참여하는 등 사회주의 진영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한편, 민족연합전선운동의 수순으로 이뤄진 정우회(政友會) 조직에 가담하는 등 민족주의 진영과의 연대에도 참여하였다. 이러한 활동은 1926년 6·10만세운동 참여로 이어졌다.고려공산청년회 권오설(權五卨)·김단야(金丹冶)·박래원(朴來源) 등이 주도한 6·10만세운동에서 「격고문」을 인쇄하고 배포하는 역할을 맡았다. 만세운동은 5월부터 조직적으로 추진되었는데, 주로 권오설의 지도로 전개되었다. 권오설은 ‘대한독립당’ 명의로, “일본제국주의의 야만적 통치로부터 탈퇴”를 선언하는 「격고문」을 작성하였다. 5월 중순 박래원과 함께 권오설로부터 작성된 「격고문」을 전달받았다. 이렇게 전달받은 「격고문」을 비밀리에 인쇄하기 위해 5월 27일경 본인의 집으로 인쇄기를 옮긴 후, 5월 31일까지 극비리에 약 5만 매를 인쇄하였다.대한독립당 명의의 「격고문」을 인쇄한 후, 이를 전국적으로 배포하기 위해 우선 경운동 천도교당에 숨겨두고 배포계획을 수립하였다. 격고문의 배포는 『개벽』, 『신민』, 『신여성』 등의 잡지에 이를 끼어 넣어 각지로 송달하기로 하였다. 또한 6월 10일 융희황제의 인산(因山)일을 기해 대규모 만세시위를 일으키고 이를 전국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철도선에 따라 호남선·경부선·경부선·경원선·경의선 방면의 4개 권역을 구분한 후 이를 실행하는 계획을 수립하였다. 이때 경의선 방면의 중심지인 사리원과 평양, 경원선 방면 중심인 원산을 근거지로 만세시위를 벌여가는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계획은 이를 사전에 인지한 일제 당국에 의해 주도자들이 검거되면서 차질이 생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세시위는 서울 등지에서 국지적으로 전개되었다.1926년 6월의 만세운동을 제2의 3·1운동으로 인식한 일제는 군대와 경찰로 이를 탄압하며, 대규모 체포 작전을 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붙잡힌 후 재판에 회부되어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문소에 수감되었다가 1929년 1월에 풀려났다. 이후 더욱 적극적으로 사회주의 투쟁에 나서기 위해 소련 행을 택했다. 그러나 1938년 4월 11일 모스크바에서 한인들에 대한 대규모 정치적 탄압과 숙청이 자행되었을 때 총살형으로 사망하였다.대한민국정부는 200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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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번 종류 죄명 처분(주문) 판결기관 판결일 제공
1 인물카드 - - - - 국사편찬위원회
2 인물카드 치안유지법위반, 대정8년제령제7호위반, 출판법위반 - 경성지방법원 1928-02-13 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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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정보 1
묘소구분 소재지
국외소재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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