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6권(2021년 발간)
1919년 4월 이후 전협 등은 각 계층을 망라한 단체를 조직하고 동지를 모아 독립 자금을 모금하기로 하고 조선민족대동단을 조직했다.
김재구는 음력 7월 강경진(姜景鎭)에게서 전협, 정필성, 윤용주(尹龍周) 등이 서울에서 조선민족대동단을 비밀리에 조직했다는 말을 들었다. 직후 전협과 윤용주를 만나 이들의 권유로 조선민족대동단에 가입하고, 독립을 위해 힘을 다할 것을 맹세하며 군자금을 건네줬다. 또한 8월 하순 전라북도 남원군(南原郡)에서 강경진, 한태현(韓泰鉉), 이범수(李範壽)를 만나 조선민족대동단 전라북도 지부를 설치해 지역 청년으로 청년단을 조직했다. 그리고 이 청년 단원에게 독립군자금을 모금할 것을 제의했다. 김재구를 비롯한 이들은 형갑수(刑甲洙), 김진명(金振明)에게 조선민족대동단에 가입을 권유해 입단하도록 했다. 또한 서울에 가서 군자금을 제공하고 임원 임명장과 ‘민족해혹(民族解惑)’이라는 제목의 책, 조선민족대동단 규칙 등을 받아 남원군으로 돌아와 동지 포섭에 노력했다.
김재구는 전라북도 남원과 임실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금하다가 1920년 9월 5일 체포된 후 석방됐다. 그러나 이후에도 군자금 모금과 동지 포섭 활동을 하다가 체포됐다. 1922년 3월 14일 광주지방법원(光州地方法院) 전주지청(全州支廳)에서 이른바 ‘대정(大正) 8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202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判決文)(강경진, 대구복심법원:1920. 4. 15)
-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국사편찬위원회, 1988) 제6권 143~157, 192~199, 245~250, 274~276, 293~315, 319~369, 571~587, 624~631, 681~686, 712~714, 733~756, 759~81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