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권(1986년 발간)
박치일은 전라남도 화순(和順) 출신이다.
1909년 7월 하순경에 김 준(金準) 휘하에서 이강산(李江山)을 의병장으로 하여 의거에 참여하였다.
이때 정인술(鄭寅述)·박장봉(朴章奉)·서성학(徐成學)·양창국(梁昌國) 등이 함께 참가하였다.
8월 29일에는 나주헌병분견소 구례파견소의 밀정으로 활약하던 이판안(李判安)·김정태(金正泰)·최치도(崔致道)·박복남(朴福男)을 살해하는 등의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그 후 그간의 활약상이 적에게 노출되어 체포되었다.
12월 25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소위 폭동 및 모살죄로 교수형이 선고되어 항소하였으나 1910년 3월 8일 대구공소심(大邱控訴審)에서 기각되었다.
6월 2일 대구형무소에서 교수형이 집행되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대구공소원 판결문
- 관보 4696호 (1910. 6. 8)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1권 846·84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