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안동에서는 1919년 3월 18일 안동장날을 기해 오전 11시경, 남문통과 종로에서 150여 명이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오후 6시경에는 기독교도를 중심으로 한 약 1백 명이 시위군중를 전개하였다. 그러나 일경이 출동하여 무력으로 제지하는 바람에 부상자가 발생하고 시위대는 해산하였다.
날이 어두워지자 군중들은 다시 모였다. 이 때 그는 김익근(金益根)·이비호(李丕鎬) 등과 함께 시위대에 합류하였다. 19일 오전 1시경, 그는 2,000여 명으로 늘어난 시위군중과 함께 군청과 경찰서·지방법원 지청으로 몰려가 그곳을 포위·투석하고 전날 체포된 동지의 석방을 요구하며 격렬히 항쟁하였다. 이날 안동에 거주하던 5백여 명의 일본인들은 전전긍긍하며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러나 사태의 위급함을 느낀 일경의 발포로 부상자가 다수 발생하였고, 시위군중은 해산하였다.
이로 인해 일경에 체포되어 1919년 5월 1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국사편찬위원회) 별집 제6권 515면
- 判決文(大邱覆審法院, 1919. 5. 10)
- 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3권 398∼39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