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8권(2023년 발간)
한휘는 중국 서안(西安)에서 한국청년전지공작대(韓國靑年戰地工作隊)에 입대하였다. 1940년 5월부터 한국청년전지공작대는 일본군 점령지역에 들어가 한인 청년을 모집했다. 한인 청년들을 중국 중앙전시간부훈련단(中央戰時幹部訓練團) 제4단 예하 한국청년훈련반에 입교시켜 군사훈련을 실시하였다.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이 창설된 후 한국청년전지공작대는 혁명역량을 집중시키기 위해 이에 합류하였다. 1941년 1월 1일 서안 시내에 있는 한국청년전지공작대 본부에서 편입식이 거행되었고, 공작대는 한국광복군 제5지대로 편제되었다. 1942년 3월 1일 지대장 나월환(羅月煥)이 사망한 후 제5지대가 제2지대로 새롭게 편성되었다.
한휘는 한국청년훈련반을 졸업한 후 광복군 제2지대 공작조로 편입되어 정보‧작전‧초모 활동을 전개하였다. 한휘와 이욱성(李旭成) 등은 1942년 12월 석가장(石家莊)·신향(新鄕) 등지에서 정보수집 및 초모공작 등을 수행했다. 이 과정에서 광복군 대원들이 순국하였다.
1943년 2월 김유신(金有信)이 산서성(山西省) 태항산(太行山)에서 전사하였으며, 같은 해 7월 중국군 제27집단군에 파견되어 작전 중이던 이한기(李漢基)‧문학준(文學俊)이 전사하였다. 또한 일본군 부대를 습격했던 김천성(金天成) 등이 1943년 3월 산서성 태원(太原)에서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어 고문을 받고 사망했다. 한휘도 1944년 7월경 전시 공작과 작전 중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불굴의 민족혼(광복군 제2지대 사진첩) 76, 107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5) 제6권, 228∼231, 382∼387, 394∼40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