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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30936
성명
한자 金益根
이명 없음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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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3.1운동 포상년도 2006 훈격 애족장
1919년 3월 19일 오전 1시경 경북(慶北) 안동군(安東郡) 안동읍(安東邑)에서 약 2000명의 군중과 함께 대한독립 만세(大韓獨立萬歲)고창(高唱)하며 안동경찰서(安東警察署)안동군청(安東郡廳) 앞으로 시위행진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1년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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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창(高唱) : 노래, 구호, 만세따위를 큰 소리로 부르거나 외침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경북 안동(安東)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안동지방은 유교의 영향이 짙은 곳으로 한말에는 의병운동이 성하였고, 일제강점 후에는 항일 독립운동의 전통이 이어져 온 곳이다. 3.1운동에도 이같은 사상은 이어져 왔다.

안동읍(安東邑)의 만세시위는 기독교계통과 천도교계통 두 갈래로 일어나 일반 군중이 여기에 호응함으로써 대의거로 발전하게 되었다. 기독교측 유지 인사들은 안동읍 장날인 3월 18일 11시 태극기를 앞세우고 만세운동을 시작하였다. 천도교측에서도 같은 시간에 봉기하여 많은 군중이 호응하였다. 만세운동이 확대되자 일본 군경이 총검으로 탄압하여 주동 인물이 검거되고 시위가 일시 중단되었다. 3천명으로 늘어난 시위대는 다음 날 다시 봉기하여 군청·경찰서·법원 등으로 다니며 애국지사의 석방과 조국의 독립을 요구하였다.

김익근도 1919년 3월 19일 오전 1시경 시위대와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안동경찰서 및 안동군청 앞으로 시위행진을 전개하였다. 이로 인해 체포된 김익근은 1919년 5월 1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刑事事件簿(安東郡)
  • 判決文(大邱覆審法院:1919. 5. 10)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도움말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김익근 - 경상북도 안동(安東) 안동군 안동면 만세시위
본문
1871년 12월 9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안동면(安東面) 신세리(新世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어물 행상을 하다가 안동 장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안동의 만세시위는 1919년 3월 13일부터 3월 27일까지 모두 14회에 걸쳐 1만여 명이 참가하였다. 3월 17일부터 23일까지 만세운동은 절정을 이루었고, 안동군 19개 면 중 11개 면에서 시위가 일어났다. 또한 만세운동은 주로 장날에 장터를 이용하여 일어났으며, 안동 지역 총 14회의 시위 중 8회가 장날에 전개되었다.안동면의 만세시위는 안동교회(安東敎會)를 중심으로 하는 기독교계와 송천동(松川洞)에 사는 송기식(宋基植) 등의 유림계가 준비하였다. 안동교회에서는 3월 13일 안동면 장날에 거사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하루 전날인 3월 12일에 계획이 발각되어 일부 주도자가 붙잡혔다. 다행히 일제 경찰의 체포를 피한 안동교회 장로 김병우(金炳宇)는 교인들과 함께 다음 장날인 3월 18일에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하고 태극기와 격문을 제작하였다. 또한 김병우는 유림들과 연락을 취하며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협동학교(協東學校), 보문의숙(寶文義塾), 동화학교(東華學校)에서도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3월 18일 안동 장날을 맞아 낮 12시 기독교인 30여 명이 곡물전 앞에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들은 대형 깃발을 앞세우고 남문통(南門通)과 북문통(北門通)을 오가며 행진을 벌였고, 이때 시위대에 참여하였다. 동시에 유림들이 이끄는 시위대도 동문통(東門通)부터 행진해 와 합류하였다. 경찰과 군인의 제지로 시위대가 해산되면서 14명이 붙잡혔다.오후 6시 무렵 기독교인 60여 명이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며 만세시위를 벌였다. 밤이 되자 시위 군중은 더욱 많아졌고, 자정을 넘어설 무렵 2,500여 명으로 늘어났다. 시위대는 군청·경찰서·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 등의 관공서로 몰려가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며 돌을 던졌다. 경찰과 수비대가 총을 쏘아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이날 이종악(李鍾岳), 이비호(李丕鎬) 등과 함께 새벽 1시까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안동경찰서, 안동군청 등에 몰려가 만세시위를 벌이다 붙잡혔다.1919년 4월 7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오히려 그 해 5월 1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형량을 높여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수형기록

도움말
수형기록
순번 종류 죄명 처분(주문) 판결기관 판결일 제공
1 판결문 보안법위반 징역 1년(원판결 취소) 대구복심법원형사제1부 1919-05-10 국가기록원
2 인물카드 보안법위반 1년 대구복심법원 1919-05-12 국사편찬위원회

묘소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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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정보 1
묘소구분 안내
미확인
  • 해당 유공자는 묘소 위치 확인이 필요한 독립유공자 입니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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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현충시설 정보
순번 종류 시설명 소재지
1 3·1독립운동 기념탑 서울특별시 중구
2 비석 안동 3·1운동 기념비 경상북도 안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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