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 음 (陰) 8.8 기삼연 (奇參衍) 과 모의 (謀議) 동년 (同年) 음 (陰) 9.24 호남의창동맹 (湖南義倡同盟) 기삼연 의병장 (奇參衍義兵將) 의 후군장 (後軍將) 으로 나주 (羅州) , 광주 (光州) , 담양 (潭陽) , 장성 등지 (長城等地) 에서 접전 (接戰) 후 (後) 고부 일헌사령부 (古阜日憲司令部) 를 ‘타도 (打倒) 키 위해 고창 (高敞) 에서 접전 (接戰) 끝에 동 성 (同城) 을 함락 (陷落) 시키고 성상 (城上) 에서 지휘 (指揮) 타가 중상 (重傷) 을 입고 은신 중 (隱身中) 일헌 (日憲) 에 체포 (逮捕) 되어 1907.11.7 순국 (殉國) 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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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권(1986년 발간)
전라남도 함평(咸平) 출신이다.
1907년 정미7조약(丁未七條約)이 체결되고 이어서 일제의 책동에 의하여 한국군이 8월에 해산되었다.
이남규는 통분함을 금치 못하다가 을미 의병으로서 호남에서 이름을 드날린 기삼연(奇參衍)과 더불어 석수승암(石水僧庵)에 회동하여 거의하였다. 이어서 의진의 진용을 편성하였는데 이남규는 후군(後軍)에 임명되었다.
음력 9월 23일 의진은 고창 문수암(高敞 文殊庵)으로 진군하는데 이를 탐지한 적군의 내습을 받아 접전하여 적에게 큰 피해를 안겨 주었다.
교전 끝에 고창성을 함락시키고 성하(城下)에서 부하를 지휘하던 중 성이 다시 무너져 중상을 입고 은신하였다. 그러나 끝내 어느 여인의 밀고로 적에게 체포되어 1907년 11월 7일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2권 611·640·641·692·693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권 597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30·4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