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경북 안동(安東) 사람이다.
1919년 당시 안동군 임북면 정산리(臨北面 鼎山里)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김진휘(金鎭暉)·조병건(趙炳建)·이원영(李源永)·이맹호(李孟鎬)·이회림(李晦林)·조사명(趙思明)·조방인(趙邦仁) 등 8명이 주동이 되어 예안면(禮安面) 예안장터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들은 동년 3월 17일 오후 3시경 예안장터와 이에 인접한 경찰주재소 앞에서 운집한 수천 명의 군중을 선도하며 독립만세를 고창하고 주재소를 습격하여 구금중인 동지들의 방면을 요구하면서 건물과 기물을 파괴하는 등 격렬한 시위활동을 벌이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그후 3월 31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소위 소요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공소하여 4월 24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5년형이 확정되었으나 1920년 감형(減刑)되어 2년 6개월간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1919. 4. 24 大邱覆審法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1342∼1346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