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경남 창녕(昌寧) 사람이다.
1919년 당시 창녕군 영산읍(靈山邑)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천도교인 구중회(具中會)·김추은(金秋銀) 등과 함께 결사단원(決死團員)으로 활약하였다.
그는 민족대표 33인 중 한사람인 신석구(申錫九)와 천도교 계통을 통하여 중앙으로부터 독립운동의 상황을 전해듣고 구중회·김추은 등과 함께 결사단을 조직하고 독립만세시위를 거사할 것을 계획하여 의거일을 13일로 결정한 후, 야간을 이용하여 목판으로 많은 태극기를 인쇄하고 요약된 독립선언서와 '대한독립만세'라고 대서특필한 큰 깃발도 준비하였다. 그리고 거사 당일에는 일경들의 제지를 무릅쓰고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일경의 무기를 탈취하여 7백여명의 군중을 선도하며 만세시위를 주동하다가 붙잡혔다.
그후 5월 10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형을 선고받아 1년여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犯罪人名簿
- 靈山文化誌 第3卷 8面
- 韓國獨立史(金承學) 下卷 250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228, 229, 230, 232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