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전남 장성(長城) 사람이다.
1919년 3월 5일 무송현 길림성 군정서(撫松縣吉林省軍政署) 흥업단(興業團) 적십자사 회계서기로 재임하며 흥업단장 김 호(金虎)의 명령을 받고 동지 이시영(李始榮) 등과 함께 안동현(安東縣)에서 도만(渡滿)하는 애국 청년 약 4, 5백명을 모집하여 백산학교(白山學校)에 입학시켰다.
1920년 11월경에는 김 호 및 흥업단 외교부장 김창규(金昌奎)의 명령을 받고 군자금 20만원을 모금할 목적으로 김인제(金仁濟)등과 함께 국내에 들어와 밀양(密陽)·양산(梁山)·대구(大邱)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1921년 3월부터 1922년 4월 하순까지는 손기성(孫基聖)등 16명의 동지들과 함께 밀양·양산·청도(淸道)·영천(永川)·달성(達城) 등지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으나, 240원을 모금하는데 그쳤다. 1922년 4월 하순경 김우창(金佑昌)·이재술(李再述) 등과 함께 권총 2정과 실탄 47발을 휴대하고 봉화(奉化)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다 동년 5월 27일 군위군(軍威郡)에서 체포되었다.
1923년 11월 22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동아일보(1922. 11. 30)
- 판결확정증명(1977. 3. 9 부산지방검찰청 발행)
- 고등경찰요사 272·273·27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