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6권(1988년 발간)
경상북도 봉화(奉化) 사람이다. 1919년 3·1운동 때에 그는 김창숙(金昌淑)·곽종석(郭鍾錫) 등과 함께 전국유림대표 137명이 파리 강화회의에 독립을 청원하는 파리장서(巴里長書)에 서명하였으며, 이의 발송에 참가했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1925년 8월 김창숙이 중국으로부터 비밀리에 입국하여(동년 8월 17일 서울에 도착) 내몽고(內蒙古) 지방에 독립군기지를 건설할 자금으로 20만원 모금을 목표로 활동할 때 이에 찬동하여 군자금 모금 사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였으며 자진해서 군자금을 제공하였는바, 이것이 소위 제2유림단사(第二儒林團)사건이다. 이로 인하여 1926년에 재차 일경에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그는 일찍부터 학문에 몰입하여 퇴계학(退溪學)의 성리설(性理說)에 관해 상당한 깊이의 이해를 가졌으며, 말년에는 향리의 덕곡서당(德谷書堂)에서 제자들과 더불어 경의(經義)와 예설(禮設)을 토론하며 교육에 전념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고등경찰요사 249·287면
- 벽옹김창숙 일대기 96면
- 기려수필 257·259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8권 935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8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