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민영로는 1939년 12월 서울 연희전문학교 재학중 조선학생동지회(朝鮮學生同志會)를 조직하여 독립선언과 학생봉기를 계획하였다.
그는 1939년 4월 7일, 연희전문학교 상과(商科) 본과(本科) 1학년에 입학하고, 12월에 동교생들과 조선학생동지회를 조직하였다. 1940년 2월부터 1941년 7월까지 남한산성·냉천동약수터·연희전문학교 뒷산·벽제관 등 각지에서 모임을 갖고 독립의식을 기르는 한편 동지규합 및 조직 확대 등 독립운동의 방안에 대해 논의하였다. 이들은 국내 학생과 동경 및 해외 유학생 등과 힘을 합해 13도청 소재지 및 중요 도시 중학교에 세포를 조직하여 3.1운동처럼 거국적으로 거사하기로 하고, 독립선언문의 작성과 임무·담당 등 밀약하였다. 거사 일자를 1942년 3월 중으로 정하고, 전국적인 조직망을 통해 삐라를 뿌리며 서울로 합류하며, 동경 히비노(日比野) 공원의 거사도 결의하였다. 이를 위해 각자 국내의 유지들과 미국유학생과도 연락을 분담하였다. 그리고 ‘조선독립을 위하여 생명을 희생하자, 겨레와 사회를 위하여 봉사하자, 상부상조 우정을 혈맹으로 두터이 하자, 끝까지 일치단결하여 항일투쟁을 행동화 하자, 최후일각까지 절대 비밀 고수하자’ 등 5개 행동 강령을 만장일치로 채택하였다.
1941년 9월 3일, 서울본부 및 동경유학생동지회대표 등이 붙잡히고, 민영로는 9월 5일에 체포되면서 차례로 각도 조직망이 붕괴되었다. 그는 1941년 9월 16일부로 퇴학을 당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學籍簿(延喜專門學校)
- 緬甸方面軍籍下師團留守名簿(1948. 12. 10)
- 臨時陸軍軍人居(槐山面長:1945. 3.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