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전북 옥구(沃溝) 사람이다.
1919년 3월 6일 군산(群山) 장날의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이곳에 처음으로 독립선언서가 도착한 것은 3월 1일이었다. 서울에서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온 김병수(金炳洙)는 독립선언서를 옥구군 개정면(開井面) 구암리(龜岩里)에 있는 영명중학교(永明中學校) 교사 박연세(朴淵世)·이두열(李斗悅) 등에게 전달하였던 것이다.
이들은 3월 6일 군산 장날을 기하여 만세운동을 벌이기로 협의하였다.
이들은 독립선언서를 복사하고 태극기를 만드는 등 거사를 준비하였다.
그러나 거사 전날인 3월 5일, 영명중학교 박연세 등의 선생들이 군산경찰서로 잡혀감으로써 거사가 수포로 돌아갈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홍천경을 비롯한 학생들이 앞장서 태극기를 들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거리로 행진하였다. 이때 같은 기독교측의 여학교 학생들도 이에 동참하였다. 또한 기독교 신자들도 가담하고 부근 주민들도 함께 나섰다. 이들 시위군중들은 평화동(平和洞)·영동(榮洞)을 거쳐 본동(本洞) 큰 거리에 이르는 동안 시위군중은 더욱 증가하여 500여 명에 달하였다.
이에 당황한 일경들은 재향군인까지 동원하는 등 긴급 출동하여 이리(裡里) 주재 헌병대의 지원을 받아 주도 인물을 강제 검거하고 시위군중을 해산시켰다.
그는 이때 붙잡혀, 이해 4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6월을 받고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6월 21일 고등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1919. 4. 30. 大邱覆審法院)
- 判決文(1919. 6. 21. 高等法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525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9卷 283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106·107面
- 全北日報(1986. 3. 5, 8. 15)
- 湖南每日新聞(1992. 8.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