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규합(糾合) : 어떤 일을 꾸미려고 세력이나 사람을 모음.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3권(1987년 발간)
전라북도 김제(金堤) 사람으로 기독교(基督敎)인이다.
1919년 3월 5일의 군산(群山) 독립만세운동과 서울의 제2차 학생시위를 주동하였다. 그는 당시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醫學專門學校) 학생으로서, 2월 25일 민족대표 33인중의 한사람인 이갑성(李甲成)으로부터 독립선언서 200여매를 전해받고, 군산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할 것을 권유받았다.
이에 그는 2월 26일 군산에 도착하여, 영명학교(永明學校) 교사인 박연세(朴淵世)의 집에서 이두열(李斗烈)·김수영(金洙榮)·고석주(高錫柱)·김윤실(金允實)·김인묵(金寅默)·이동욱(李東旭) 등과 만나 서울의 독립만세시위 계획을 전하고, 군산에서도 이에 호응하여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할 것을 권유하였다. 다시 3월 1일 박연세의 집에서 이두열·김수영 등과 만나, 독립선언서 1백여매를 전해주고 주민들에게 배포하도록 하였다. 그의 이같은 활약으로 3월 5일 군산에서 대대적인 독립만세 시위가 전개될 수 있었다.
군산에서의 독립만세 시위계획을 끝내고 상경한 그는, 3월 5일 남대문 정거장 앞에서 학생대표인 강기덕(姜基德)·김원벽(金元璧) 등과 태극기를 흔들며 수백명의 학생들을 지휘하면서 독립만세시위를 주동하다가 체포되었다. 그리하여 1920년 2월 2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실형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2권 112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9권 200·283·285·337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권 44·111·113·114·157·160·161·163·177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3권 121·141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52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