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6권(1988년 발간)
경북 안동(安東) 사람이다.
1943년 여름에 일제는 방학중에도 학생들을 강제로 근로동원에 참가시키며 전쟁준비에 광분하였는데. 이때 대구 동촌비행장의 확장공사에 동원되었던 안동농림학교 학생중 제 8·9·10회생들은 일제의 부당한 식민정책에 항거하기 이해 항일결사 조선회복연구단(朝鮮回復硏究團)을 결성하였다. 동결사에는 학생들뿐 아니라 일부 교유 및 사회인도 참가하였다.
구국의 일념으로 결합된 이들은 일제의 후방을 교란함으로써 일인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또 연합군을 유리하게 하여 조국독립을 촉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따라서 투쟁방략으로는 안동시내의 일본인 기관 및 요인을 습격하는 것이었다.
이때 그는 동교의 10회생으로 동결사에 참가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고 한다.
이들은 때를 기다리며 거사준비를 진행하던 중, 1945년 3월 10일, 즉 소위 일본 육군기념일에 총궐기하기로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추진하였다.
그런데 거사직전인 동년 3월초에 동결사의 조직이 발각됨으로써 전단원이 붙잡혔다고 한다.
그의 장례를 집례(執禮) 하였던 안동교회 김광현(金光顯)목사의 증언에 의하면, 붙잡힌 후 그는 일경의 혹독한 고문으로 빈사상태에 이르게 되어 1945년 6월 5일에 가족에게 인계되었으나 3일후에 순국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안동농림40년사 54∼5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