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전북 임실(任實) 사람이다.
그는 전북 옥구군(沃溝郡) 개정면(開井面) 구암리(龜岩里) 소재 예수교병원 사무원으로 있던 중 1919년 3월 초 영명중학교(永明中學校) 교사 박연세(朴淵世)·이두열(李斗悅)·김수영(金洙榮) 등과 3월 6일 군산 장날을 기해 만세시위를 일으키려다가 사전 발각되는 상황에서 만세시위를 강행하였다.
이들이 서울에서의 3·1운동 소식을 접한 것은 3월 1일이었다. 서울에서 청년학도 김병수(金炳洙)가 영명학교 교사 박연세 등에게 선언서를 전달하면서, 옥구에서의 만세운동은 즉각 추진되었다. 이 때 만세운동의 중심인물들은 영명학교 교사와 양성도가 근무하는 예수교병원의 인사들이었다.
이들은 거사 일을 3월 6일 군산 장날로 정하고, 영명중학교 기숙사 2층 다락방에서 선언서와 태극기를 인쇄·제작하였다. 그런데 3월 5일 오전에 이러한 움직임을 사전에 탐지한 일경에 발각되면서, 박연세 등의 교사들이 붙잡혔다.
이 때 양성도 등은 더 이상 발각되기 전에 거사를 일으키기로 뜻을 모으고 3월 5일 오후에 수천 매의 선언서를 배포하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때 시위대는 군산 시내를 행진하였으며, 시위에 참가한 사람은 5백여 명에 달했다.
그는 이 일로 붙잡혀 1919년 4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아 공소하였으나 6월 12일 고등법원에서 기각,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1919. 4. 30. 대구복심법원)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9권 283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3권 523∼525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5집 1498∼150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