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3권(1987년 발간)
충청남도 서천(舒川) 사람이다.
1919년 4월 28일 마산면(馬山面) 신장리(新場里)에서 송기면(宋箕勉)·유성렬(劉性烈)·임학규(林學圭)등 기독교인(基督敎人)들과 함께 이튿날의 신장리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시위를 거사하기로 합의하였다.
거사일인 4월 29일 송기면이 미리 제작한 태극기 200여매를 가지고 장터로 나아가, 모여드는 장꾼들에게 나누어주며 독립만세운동에 같이 참여하도록 권유하였다.
그는 2천여명이 운집한 장터에서 송기면과 함께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태극기를 흔들고 장터를 행진하다가, 일본 경찰에 의해 송기면과 유성렬이 강제로 경찰 출장소로 연행당하자 나상준(羅相俊)과 함께 시위군중을 지휘하여 태극기를 흔들며 경찰출장소로 돌진하다가 체포되었다.
그는 이해 6월 14일 고등법원에서 징역 1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173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128·129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권 117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