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6권(1988년 발간)
전남 해남(海南) 사람이다.
연희전문학교 재학중인 1939년 12월에 시내 사직동 소재 자신의 집에서 동교생 김상흠(金相欽)·서영원(徐泳源)·김영하(金永河)·김재황(金在璜)·이동원(李東元)·민영로(閔泳魯)등과 함께 항일결사 조선학생동지회(朝鮮學生同志會)를 조직하였다고 한다.
동회는 3·1독립운동과 같은 방법으로 독립투쟁을 하기로 하고 1942년 3월 1일을 거사일로 정하였다. 그 동안에도 이들은 전국적으로 조직을 확대시키기로 하고 동경유학생 등 해외유학생과도 연락을 맺어 거국적인 거사를 계획하였다. 이때 그는 외부인사와의 연락을 맡았다.
그후 그는 동지들과 함께 1940년 2월부터 1941년 7월까지 남한산성·냉천동약수터·연희전문학교 뒷산·벽제관 등 각지에서 모임을 갖고 독립의식을 기르는 한편 동지규합 및 조직확대에 힘을 쏟았다.
그런데 1941년 7월에 동회의 하부조직인 원산상업학교의 조직이 일경에 발각됨으로써 동조직의 전모가 드러나게 되었다. 이로써 그는 동년 9월에 일경에 붙잡혔으며 또 연희전문학교에서 퇴학당했다.
붙잡힌 후 모진 고문을 당하다가 1943년 3월에 함흥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광복 후 연희전문학교에서는 그의 공로를 기리는 뜻으로 추가졸업장을 수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 신분장지문조회회보서
- 연희전문학교 학적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