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8권(1990년 발간)
서울 사람이다.
일찍이 독립운동에의 큰뜻을 품고 일본으로 건너가 노동자 생활을 하였다. 1943년 5월 일본 천기(川岐)에 있는 일본강관주식회사(日本鋼管株式會社)에 취업 중이던 한국인 노동자들이 일제의 한국인 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대우로 궐기하여 농성시위를 감행하자 농성시위를 주도하는 등의 적극적인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그후 1945년 5월 동지 조문기(趙文起)·유만수(柳萬秀)·우동학(禹東學)·권준(權俊) 등과 함께 서울 관수동(觀水洞) 130번지 유만수의 집에서 비밀결사인 대한애국청년당(大韓愛國靑年黨)을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그러던 중 동년 7월 24일 서울 부민관에서 조선총독·조선군 사령관·친일파의 거두 박춘금(朴春琴) 등이 참석한 가운데 소위 아세아민족분격대회(亞細亞民族憤激大會)가 박춘금의 주최로 개최된다는 소식이 신문지상을 통해 보도되자 이기회에 일제 침략자와 친일 민족반역자를 처단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조문기·유만수 등과 함께 수차에 걸쳐 비밀회합을 갖고 폭탄의 장치 등 거사에 필요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그리하여 7월 24일 저녁 친일매국대회가 개최되는 곳에 잠입하여 장치해 둔 2개의 폭탄을 터뜨려 요란한 폭음을 내며 폭발하여 대회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리하여 소위 아세아민족분격대회는 이들의 거사로 인해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으며 이 거사는 일제 말기 한민족의 민족적 의열투쟁의 대미(大尾)를 장식한 쾌거로 기록되고 있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805면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국사편찬위원회) 13권 86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