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경(日警) : 일제 경찰.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1901년 대한제국기 궁내부(宮內府) 시종원(侍從院) 우시어(右侍御), 지방제도 조사원, 내부(內部) 주사(主事) 등을 지냈다. 1920년대 들어 사회운동에 투신한 그는 1922년 무산자동맹회(無産者同盟會), 1923년 신사상연구회(新思想硏究會)에 가입하여 민족 계몽과 일제 식민지배를 타도하기 위한 항일운동에 진력하였다. 1924년 동아일보사(東亞日報社) 지방부장, 1925년부터는 시대일보사(時代日報社) 영업국장 및 논설부장으로 근무하면서 신문기자단체인 무명회(無名會)에 가입하여 언론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화요회그룹과 연관이 있는 불꽃사[火焰社]의 동인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1925년 6월 조선공산당(朝鮮共産黨)에 입당한 뒤 1926년 제2차 조선공산당 중앙검사위원이자 혁명자후원회 위원이 되었고, 3월에는 당중앙위원회 후보위원으로 선출될 만큼 핵심역할을 담당하였다. 1927년 3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국제 모플 제2차 대회에 조선 대표로 참석하기도 하였다. 모스크바에서 상해로 건너간 그는 1927년부터 크게 일어난 민족유일당운동(民族唯一黨運動)에 적극 참여하였다. 한국유일독립당상해촉성회(韓國唯一獨立黨上海促成會)에 가입하는 한편, 1927년 9월 중국공산당에 입당해 장쑤성[江蘇省]위원회 법남구(法南區) 한인지부에서 활동하였다. 1929년 6월 대만·일본 등의 반제운동가들과 함께 동방피압박민족반제동맹주비회를 결성했으며, 동년 11월부터 총무부 비서로 활동하였다. 한국유일독립당상해촉성회가 해체되자, 유호한국독립운동자동맹의 총무부장으로 활동하면서 기관지 『앞으로』를 발행하는데 참여하였다. 1929년 11월 국내에서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호응해 광주학생운동을 선전하고자 상해 각 단체 연합회를 결성하고 동방피압박민족반제동맹주비회의 이름을 내걸고 광주학생운동을 지지하는 대중적 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1930년 상하이[上海]에서 3·1운동 기념시위, 6·10만세운동 기념시위, 8·29망국기념시위 등을 주도하다가 그해 9월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된 뒤 징역 6년을 선고받고 대전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35년 12월 만기 출옥하였으나, 옥고의 여독으로 1937년 2월 28일 사망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東亞日報(1926. 6. 24·7. 24∼7. 25, 1929. 11. 11, 1930. 10. 20, 1931. 10. 4·12. 10∼11)
- 天津大公報(1930. 9. 14)
- 中央日報(1931. 12. 10·12. 17)
- 朝鮮中央日報(1931. 12. 11)
- 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海外의 韓國獨立運動史史料(국가보훈처, 1992) 제5권 305∼306면
- 오늘의 한국(潘公昭, 1947)
-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창작과 비평사, 1996) 30·31면
- 중국공산당 상해한인지부연구(최봉춘, 동북아 연구 제13호, 1996) 113∼114면
- 具然欽체포에 관한 건(1930. 9. 29), 思想에 關한 情報綴 제10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