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서울 사람이다.
1915년 3월 경성고보(京城高普) 교원양성소(敎員養成所) 출신 이용우(李用雨) 등이 민족정신 고취와 일본인들에게 침탈당한 사업을 한국인 스스로 부흥시킬 것을 목적으로 조선산직장려계(朝鮮産織奬勵 )를 조직하자, 계원으로 가입하여 민족자본의 육성을 위한 주식 모집 활동을 전개하다가 일경에 발각되어 1917년 3월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송치되었다.
그 후 일본 조도전대학(早稻田大學)을 졸업한 뒤, 중국으로 건너가 1919년 3월 상해에서 고려교민친목회(高麗僑民親睦會)를 조직하고 회장으로 선임되어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기초를 다졌다.
1919년 4월 상해에서 개최된 임시의정원 제1차 회의에 참석하여 임시정부 교통총장(交通總長)으로 선임된 그는 국호(國號)를 대한민국으로 결정하고, 입법기관의 이름을 대한민국 임시의정원(臨時議政院)으로 결정하는 등 국무원(國務院) 구성과 임시헌장을 제정하여 임시정부 기본법의 기초를 닦았다. 또한 같은 달 개최된 임시의정원 3차 회의에서 경기도 의원, 의원자격심사위원(議員資格審査委員) 등으로 선임되어 민족운동을 위해 진력하였다.
그 뒤 귀국하여 1924년 1월 서울에서 최 린(崔麟)·김성수(金性洙)·송진우(宋鎭禹)·안재홍(安在鴻)·조만식(曺晩植) 등과 함께 연정회(硏政會)를 조직할 것을 계획하였으며, 같은 해 9월에는 조선일보(朝鮮日報)를 인수하여 상무이사와 사장 등을 역임하면서 민족 언론의 창달을 위해 헌신하였다.
1927년 2월 안재홍(安在鴻)·김준연(金俊淵) 등 30여 명의 민족주의자들과 함께 통일전선의 일환으로 결성된 신간회(新幹會)에 참여하여 총무간사, 신간회 경성지회(京城支會) 대표로 선임되어 지회 조직 건설에 앞장서는 등 주도적인 활동을 펼쳤다.
광복 뒤 1949년 초대 주중대사(駐中大使)로 임명되기도 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고등경찰요사(경북경찰부) 46·49·86·87·153·167·263·845면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국사편찬위원회) 제8권 391·402·748면
- 기려수필(국사편찬위원회) 243면
- 임시정부의정원문서(국회도서관) 39∼42·44·45·51면
- 무장독립운동비사 24∼26면
- 민족독립투쟁사사료(해외편) 13·20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339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318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3권 676·734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4권 157·159·162·173·198·200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7권 644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8권 563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9권 143·464·468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10권 751∼754·759·935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9집 38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2집 88·1218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3집 49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4집 291∼293·301·309면
- 동아일보(1927. 1. 20, 2. 17, 1928. 2. 22, 1949. 8. 20)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2권 3·34·435면
- 벽옹김창숙일대기(심산사업회) 109면
- 한국민족운동사료(중국편)(국회도서관) 19·20·29·33·38·41·43·62∼65면
- 조선일보(1949. 8. 20)
- 조선민족운동연감 4·8·14·16·2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