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평남 평양(平壤) 사람이다. 1940년 9월 17일 중국 중경(重慶)에서 창설된 한국광복군총사령부(韓國光復軍總司令部)는 임시로 광복군을 4개 지대(支隊)로 편성하고 각 지대 내에 3개 구대(區隊)를 두고, 다시 각 구대 내에 3개 분대(分隊)를 설치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광복군의 부대 편성은 부대원의 다수 부족으로 1942년 4월 김원봉(金元鳳)이 이끄는 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가 광복군 제1지대로 편입함에 따라 겨우 2개 지대로 편성될 정도였다. 이에 따라 광복군총사령부가 1942년 2월 김학규(金學奎)를 산동성(山東省)으로 특파하여 일본군으로 강제 징집당한 한국 청년들을 대상으로 초모공작(招募工作)을 전개하도록 하자, 김학규는 양자강 이남의 안휘성(安徽省) 부양(阜陽)에 머물면서 3년 남짓 초모활동을 전개하였다. 1945년 1월경 중국 하남성(河南省) 녹읍(鹿邑)에서 광복군 제3지대 전방 지하공작원 김 철(金哲) 및 김기극(金基極)과 접선한 그는 적지구공작대(敵地區工作隊) 연락원으로 활동하다가 동년 2월 동지(同地)를 탈출하였다. 그리하여 5월 광복군에 입대하여 김학규가 이끄는 제3지대 제1구대 본부 구호대원(救護隊員)으로 조국독립 투쟁을 위해 적극 활동하다가 광복을 맞이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 사진(광복군 제3지대 구호대원, 1945. 7월)
- 광복군명단(광복군동지회, 1977)
- 입증서(김국주·조동린 등 제3지대 포상자)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6권 415, 61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