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권(1986년 발간)
황해도 송화(松禾)군 연중(蓮中)면 온수(溫水)리에서 태어났다.
1907년 4월 양기탁(梁起鐸)·안창호(安昌浩)·전덕기(全德基) 등을 중심으로 국권회복을 위한 비밀결사로서 신민회(新民會)가 창립되자 이에 가입하여 황해도 지회에서 활동하였다.
신민회가 만주에 무관학교(武官學校)를 설립하고 독립군기지 창건사업을 추진할 때 이에 적극 참가하여 1910년 12월 초순 만주 안동현(安東縣)을 독립군기지 후보지로 시찰하여 물색하고, 평안북도 용천(龍川)의 신민회 회원인 김용규(金容奎)·고일청(高一淸)·김용삼(金容參)·김희록(金熙錄)·김성주(金成柱) 등 동지들과 함께 1910년 12월 하순 연락근거지를 만드는데 성공하였다. 감익룡 등은 안동현에서 상업을 경영하면서 안동이 만주 중국으로 가는 통로이므로 이곳에 하나의 거점을 설립하여 한편으로는 다수의 청년들을 북경무관학교에 입학토록 알선하고 그 입학자금을 공급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서간도에 세울 독립군기지와 무관학교에 갈 이주민을 모집하는 사업을 하였다.
일제가 1911년 1월 신민회의 무관학교와 독립군기지 창건운동을 탄압하기 위하여 관계인사를 검거한 소위 「양기탁 등 16명 보안법위반사건」으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경성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무장독립운동비사 14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2권 216면, 10권 668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1권 549·550면, 14권 80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