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평양(平壤)의 3·1만세운동은 숭덕학교(崇德學校) 교정, 남산현교회(南山峴敎會), 천도교구당(天道敎區堂)의 집회에서 시작되었다. 채애요라는 3월 1일 평양 남산현교회의 독립만세운동 집회에 참석하여 전날 직접 제작한 태극기 100여 장을 배포하고 혈성가(血誠歌)를 부르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각 집회에서 행진해 온 시위군중은 평양경찰서 앞에서 합세하여 도청, 재판소, 평양역 광장, 평양부청, 평양형무소 등 시가지를 돌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오후 7시경에는 평양경찰서 앞에서 경찰과 충돌하였다. 이 가운데 많은 사람이 부상당하고 수백 명이 검거되었다. 밤에는 학생들이 다시 행진하며 만세를 부르는 등 만세운동의 열기는 계속되었다.
채애요라는 체포되어 1919년 7월 21일 평양복심법원, 1919년 9월 29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高等法院:1919. 9. 29)
- 알림(三一여성동지회 발신, 蔡惠秀 수신, 1969)
- 永遠의 횃불(3·1선도자 찬하회/중앙여자중고등학교, 1971) 322~325면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