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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1274
성명
한자 孫鶴翼
이명 孫武釋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국내항일 포상년도 1990 훈격 애족장
1927년부터 1932년까지 항일 활동하다 수차 구금 되었으며 민족주의사상 고취 목적으로 학생운동에 주력 중 경주(慶州) 여행 시 민족감에 부르는 노래를 부르다가 일경피체 1945.2.27 부산지법(釜山地法)에서 임시보안령 위반죄로 징역 4년형을 받고 복역 중 8.15 광복으로 출옥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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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경남 울주(蔚州) 사람이다.

1927년 가을 유명술(柳命述)과 함께 방어진(方魚津)에서 생선장수를 가장하고 활동하던 중 신주극(申周極)의 지령을 받아 항일격문을 살포하려다 일경에 붙잡혀 구금당하였다고 한다.

1928년에는 대구(大邱)에서 대협(大協)이라는 단체에 가담·활동하던 중 다시 일경에 붙잡혀 3개월간 옥고를 치렀다고 한다.

또한 1930년에는 박재기(朴在基)·변기학(卞奇學)과 함께 만주 길림성(吉林省)으로 건너가 그곳의 독립운동 상황을 살핀 후 흥사단(興士團) 계열의 반제동맹(反帝同盟)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붙잡혀 6개월간 구금당하였다.

그는 1932년 서울로 돌아와 김중만(金重晩) 등 3명의 동지와 더불어 독립운동의 방안을 모색하였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자 경남 양산(梁山) 일대로 근거지를 옮겨 활동하던 중 일경에 붙잡혀 구금당하였다고 한다.

이후 그는 여운형(呂運亨)과 김창숙(金昌淑)의 지시를 받고 건국동맹(建國同盟)의 지하조직 결성에 힘쓰는 한편 항일학생운동에도 관여하다가 붙잡혀 1945년 2월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 4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광복을 맞아 출옥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신분장지문조회회보서

수형기록

도움말
수형기록
순번 종류 죄명 처분(주문) 판결기관 판결일 제공
1 인물카드 치안유지법위반 - - - 국사편찬위원회

묘소정보

도움말
묘소정보 1
묘소구분 묘소명 소재지
국립묘지 대전현충원 대전광역시 유성구
국립묘지 안장자 위치정보 시스템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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