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1896년 1월 김복한(金福漢) 등의 홍주의진에 참여하여 의병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3년을 받았다.
1895년 10월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항거하여 창의를 도모하고 김복한은 1896년 1월 12일 향회를 열어 홍주 일대의 유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군사행동을 결의하였다. 이들은 180여 명의 민병을 모집하여 다음날 홍주성에 입성하였다. 그러나 1월 17일 관찰사 이승우의 배반으로 김복한·이설·홍건·안병찬·이상린·송병직·임승주 등 23명이 구금되었으므로 홍주의병은 실패하고 말았다. 이들은 2월 13일 서울로 압송되던 중 모두 무죄 석방되었다. 그러나 제천에서 유인석이 의병을 일으키는 등 각처에서 의병 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나자, 2월 14일 다시 서울로 압송되었다.
1895년 4월 7일 김복한 유배 10년, 홍건·이상린·송병직·안병찬 징역 3년, 이설 장(杖) 60도(度) 받았다. 이날 밤 자정 판사 김교헌(金敎獻)은 이들을 불러들여 임금의 특지에 따라 전원 사면 석방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별집 제1집 335면
- 官報(1896. 4. 10)
- 梅泉野錄(국사편찬위원회) 479·485·495면
- 韓末義兵硏究(김상기, 1997) 225~232면
- 判決宣告書(高等裁判所:1896. 4. 7)
- 高宗時代史(국사편찬위원회) 제4집
- 湖西義兵事蹟跡(編譯 李九榮 1993) 167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1권 173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1집 563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2집 255~28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