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전남 보성 출신으로 안규홍의진(安圭洪義陣)에 일본군의 기습 정보를 제공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전남 보성 출신의 안규홍은 1907년 군대 해산 후 거의를 목적으로 일심계(一心契)를 조직하고 주인에게 군량과 자금을 받아내는 한편, 참봉 안극(安極)에게서도 무기와 자금을 제공받았다. 1908년 2월 관북 출신의 강성인(姜性仁)과 합세하여 병력 70여 명으로 대오를 정비한 후 의병대장으로 추대되었다. 안규홍의진은 1908년 2월부터 1909년 9월 25일까지 보성·진산·순천·고흥·장흥·광양·함평 등지에서 대일 항전을 전개하였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1908년 2월 보성으로 들어오는 일본군에 대한 기습작전으로 전군을 궤멸시킨 파청대첩(巴靑大捷)과 1908년 8월 24일 진산(眞山)에서 일본군 수비대 및 기병과 격전을 벌여 일본군 5명에게 중상을 입히고 크게 이긴 진산대첩(眞山大捷), 그리고 1909년 5월 이후 함평의 심남일(沈南一)과 연합전선을 꾀하여 각처에서 유격전을 감행한 것이었다. 1909년 9월 25일 보성에서 광주경찰서 토벌대에게 체포된 안규홍은 1911년 5월 5일 대구 감옥에서 교수형에 처해져 순국하였다.
최봉성은 1908년 음력 4월 안규홍의진이 봉래 시장에 주둔하고 있을 때 일본군 수비대가 출동하고 있다는 정보를 제공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었다. 1909년 5월 31일 대구공소원에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大邱控訴院:1909. 5. 31)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별집 제1집 706~707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1권 607~60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