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8권(1990년 발간)
평남 중화(中和) 사람이다.
1909년 11월경 이재명(李在明)·오복원(吳復元) 등과 서울에서 만나 이완용(李完用) 등 매국적 처단을 계획하고 11월 하순경부터 12월 상순까지 평양·서울 등에서 동지규합과 거사준비에 힘썼다. 이때 그를 이재명의 지시로 이완용의 동정을 탐지하고 12월 23일 이완용 등이 명동성당에 참석한다는 소식을 알고 동지에게 알렸다. 그리하여 이재명이 서울 명동성당 앞에서 이완용을 찔러 중상을 입힌 후 붙잡히자, 공범으로 연루 붙잡혀 경성지방법원에서 7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16년 출옥후 만주로 건너가 흑룡강성(黑龍江省) 지역의 황무지를 개간하고 독립운동에 필요한 군자금을 조달하는 한편 독립군 양성을 위해 학교를 설립하고 송강의원(松江醫院)도 개설하여 독립운동가의 규합에 진력하였다.
1920년에는 고려혁명군(高麗革命軍) 조직에 참여하여 독립투쟁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452·453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00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215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1권 476·477·482∼486·490·498·502·503·512·523·529·554·559·561∼56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