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1895년 12월(음)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에 항거하여 김복한(金福漢) 등이 창의한 홍주의진(洪州義陣)의 서면(西面) 소모관(召募官)으로 홍주의사(洪州義士) 6인 중 한 사람이다.
홍주의진은 1895년 12월 3일 홍주관찰사(洪州觀察使) 이승우(李勝宇)를 창의대장으로 삼고, 김복한을 수석으로 추대하여 창의하였다. 그러나 홍주관찰사 이승우는 거의의 뜻을 번복하고 김복한·이설(李설)을 비롯한 23명을 구금하였다. 이들 중홍주의병 6의사인 김복한·이설·홍건(洪楗)·안병찬(安炳瓚)·송병직(宋秉稷)·이상린(李相麟) 이외에 17명은 모두 무죄 석방하고, 1월 12일 김복한 등 6명은 법부 훈령에 따라 서울의 한성재판소(漢城裁判所)로 이송되었다. 2월 23일 고등재판소 재판장 이범진(李範晉)이 이들을 불러 공초하고 25일 실형을 선고하였는데, 송병직은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이날 밤 자정 임금의 특지(特旨)로 전원 사면 석방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高宗時代史(1896.4.7)
- 洪州義兵實錄(洪州義兵遺族會, 1986)
- 洪陽紀事(林翰周, 1958)
- 官報(1896. 4. 9)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권 709면
- 한국사(國史編纂委員會, 1999) 372면
- 承政院日記(1896. 2. 27)
- 日省錄(1896. 2. 27)
- 高宗實錄(1896. 4. 9)
- 騎驢隨筆(宋相燾) 89면
- 梅泉野錄(黃玹, 19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