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전남 함평(咸平) 사람이다.
1909년 7월부터 9월 경까지 전남 함평·영광 등지에서 이강산(李江山) 의진에 가담하여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상업에 종사하던 평민 출신의 이강산은 망국의 상황에서 1909년 7월 의병을 일으키기로 뜻을 세우고 함평군 대야면에서 동지를 모집하였다. 이때 서성학은 정인술·박치일·양창국·박장봉 등과 함께 이강산과 뜻을 같이 하기로 결의하고 의병을 조직하였다.
이강산은 일찍이 의병전선에 참전하여 명성을 드날렸던 김준(金準 : 金泰元) 의진을 계승하여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호남창의회맹소(湖南倡義會盟所)의 선봉장 김준은 1908년 봄 일본군과 교전 끝에 순국하였지만, 김준의 의병부대는 그 부하들에 의해 유지되고 있었는데, 이강산은 독자적으로 의진을 편성하여 계속 활동하였다.
이강산의진에서 서성학 등은 함평·영광 등을 무대로 군자금을 모집하는 한편 1909년 8월에는 나주헌병분견소 구밀파견소에 속해 있으면서 평소 의병활동을 방해하던 밀정 3인을 처단하는 등 활동하였다.
그는 이 일로 체포되어 1909년 12월 25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소위 폭동, 모살죄로 사형을 받고 1910년 6월 2일 대구감옥에서 사형이 집행되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別集 第1輯 846·847面
- 大韓每日申報(1910. 6.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