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3권(1987년 발간)
충청북도 영동(永同) 사람이다.
1919년 3월 27일 육창주(陸昌柱)·허상기(許相基)·김용이(金龍伊)등이 이원(伊院) 장날을 이용하여 일으킨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당시 수많은 군중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쳤는데, 이날 우연히 시장에 들른 허 양은 자신도 대한의 신민(臣民)으로 독립만세대열에 가담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군중의 앞에 서서 헌병대로 달려가 창문과 담장을 부수며 격렬한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때 출동한 일본 헌병에게 잡히어 유치장에 갇혔으나, 김용이와 함께 유치장을 탈출하여 시위군중과 합세하여 다시 주재소에 돌을 던지고, 말뚝을 뽑아 헌병을 구타하는 등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러나 결국 일경에게 다시 체포되어, 이해 6월 2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권 1111·1112·1113·111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