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전북 남원(南原) 사람이다.
그는 1919년 7월 대동단(大同團)에 가입한 후 김재구(金在九)·한태현(韓泰鉉) 등과 남원지방을 중심으로 조직확대에 힘을 쏟는 한편 서울의 대동단 본부로부터 교부받은 각종 선전물을 배포하면서 독립의식을 고취하였으며, 군자금을 모집하여 대동단 본부에 제공하는 등 독립운동에 앞장섰다.
대동단은 1919년 3월 말 전협(全協)·최익환(崔益煥) 등이 전 민족의 대단결을 표방하고 서울에서 결성한 독립운동단체로서, 본부를 서울에 두고 전국 각처에 지단을 설치하였다. 또 동단에서는 당시 사회 각층을 황족(皇族)·진신(縉紳)·유림(儒林)·종교(宗敎)·교육(敎育)·상공(商工)·노동(勞動)·청년(靑年)·군인(軍人)·부인(婦人)·지역구역(地域區域) 등 11개 단(團)으로 분류하고, 이들 각층의 인사들을 통일·종합함으로써 범국민적 조직을 구상했다. 강경진 등이 활약한 남원지단에서는 주로 청년단원을 근간으로 조직활동을 벌였다. 또 이들은 자금을 수합하여 서울의 대동단본부를 지원하기도 했다. 그런데 1919년 11월 대동단 본부가 주도한 의친왕(義親王)의 상해(上海) 망명계획이 일경에 발각됨으로써 대동단 조직의 전모가 드러나게 되었다. 그리하여 동단의 전라북도 지단도 자연 발각되었고, 이로 인하여 그는 1920년 3월 15일 광주지방법원 군산지청에서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1920. 4. 15 대구복심법원)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4권 444·445·446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9권 981·98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