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권(1986년 발간)
나기덕은 경남 통영 출신으로 최익현의진(崔益鉉義陣)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최익현은 1906년 2월 문인 최제학(崔濟學),임병찬(林炳瓚) 등과 전라도 태인(泰仁),순창(淳昌) 등지에서 각지에 격문을 보내 문인들을 중심으로 113명의 동맹록을 만들었다.
동년 4월 13일 태인의 무성서원(武城書院)에서 강회를 열고, 각처의 포군(砲軍)을 모집하여 무기를 준비하였다. 최익현은 기병소(起兵疏)를 올리고 창의한 뒤, 정읍(井邑),순창(淳昌),곡성(谷城) 등지를 전전하며 군사와 무기를 확충하니 군사는 800여 명으로 늘어났다. 4월 20일 순창에 주둔하던 중 관찰사 이도재(李道宰)가 의병을 해산하라는 황제의 칙지(勅旨)와 고시문(告示文)을 보냈고, 이어서 전주,남원의 관군이 포위망을 형성하고 공격해 왔다.
최익현은 한국인이 한국인을 치는 것은 차마 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여 의진을 해산하고, 4월 21일 새벽 면암을 비롯한 유생 12명은 체포되고 말았다. 최익현을 비롯하여 문인 12명은 서울로 압송되었다.
이로 인해 나기덕은 1906년 6월 26일 일본군사령부에서 태(苔) 100도(度)를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1권 382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2집 72, 130, 736, 743, 757면